종자전쟁, 한 알의 씨앗이 세계를 바꾼다!

2015-03-3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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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최규온 기자 =전북 김제 민간육종연구단지가 30일 종자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한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이로써 전북은 민간육종연구단지 설립과 농촌진흥청 이전으로 종자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게 됐다. 세계는 이미 총성 없는 식량안보 전쟁을 시작한 지 오래다. 선진국들은 식량안보와 산업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수 십 년 전부터 유전자원에 대한 주권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우리나라 종자산업은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그나마 남아 있던 국내 종자회사들도 대부분 외국자본에 넘어 갔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제 민간육종연구단지 착공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제 ‘씨앗’이 하나 뿌려졌다.
 

30일 착공식을 가진 김제 민간육종연구단지 어린이 합창단 축하공연[사진=김제시 제공]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미국 국립식물원의 베리윙거 박사가 이끄는 한 무리의 식물학자들이 비밀스럽게 한국을 찾았다. 추위에 강한 종자를 찾기 위해서다. 그들은 해군함정까지 동원해 흑산도, 홍도 등 주로 섬지역을 돌며 동백나무, 단풍나무 등의 종자를 채집해 갔다. 그때 채집해 간 우리 자생식물만도 무려 4000여종에 달했다.

그 가운데에는 ‘홍도비비추’로 불리는 옥잠화도 있었다. 이후 옥잠화는 한국산이라는 사실이 철저히 가려진 채 잉거 박사의 이름을 딴 ‘잉거 비비추’라는 낯선 미국산 식물로 둔갑했다. 각종 식물병에 저항성이 강한 참나리의 유전형질은 유럽의 백합 개량에 사용됐다. 정원수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북한산 털개회나무는 ‘미스김 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돼 우리나라에 역수입 되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은 일찍이 콩의 중요성을 깨닫고 콩 종자 사냥터로 한반도를 겨냥했다. 미국이 지난 80여년 간 우리나라에서 수집해 간 콩 종자는 5500여 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우량 품종으로 개발해 세계 각국으로 수출하면서 미국은 현재 콩 수출국 세계 1위가 됐다. 반면 우리나라 콩 자급률은 6.9%에 불과하며, 약 90% 가량을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콩 종자국으로서 좋은 콩 종자를 모두 빼앗겨 버린 것이다.

◇생물다양성 국제협약 발효 후 종자 소유권 인정

이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우리의 토종식물이 외국으로 빠져나가 새로운 품종으로 개발되거나 다른 산업적 용도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 미국과 일본, 유럽 등의 식물 도둑들이 끊임없이 국내 자생식물을 반출해 갔지만 우리는 이것들이 훗날 엄청난 고부가가치를 지닌 자원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종자산업은 연평균 5%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블루오션 산업이다 [자료사진]


과거 동·서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핵전쟁 못지않게 물밑에서는 ‘씨앗(종자)’ 경쟁이 치열했다. 미국은 이미 100여년 전부터 세계 모든 작물의 씨앗을 모으기 시작해 지금은 야생종을 포함 40만여 종이 넘는 종자를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 소련인 러시아 역시 60여년 간에 걸쳐 약 30만여 종의 씨앗을 수집해 놓고 있다는 보고서도 있다.

종자산업은 연평균 5%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블루오션 산업이다. ‘한 알의 씨앗이 세계를 바꾼다’는 말처럼 세계는 지금도 소리 없는 종자전쟁을 벌이고 있다. 종자전쟁은 지난 1993년 12월 고유 종자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해 주는 ‘생물다양성 국제협약’이 발효된 이후 더욱 가속도를 내고 있다.

◇로열티 분쟁 그리고 ‘골든시드(Golden Seed) 프로젝트’

세계 각 나라들의 종자전쟁은 진즉이 현실로 다가왔다. ‘로열티 분쟁’이 그것이다. 지난 2001년 장미가 품종보호 대상이 되면서 촉발된 로열티 분쟁은 국내에서 수요가 많은 작물이 대거 품종보호 대상에 포함되면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씨앗이 금값보다 비싸다는 파프리카


비타민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파프리카 1개 가격은 100g당 1,000원 안팎인데 비해 작은 씨앗 1개 가격은 무려 500원 내외이다. 더 놀라운 것은 바로 파프리카 씨앗 1g이 약 12만원을 호가한다는 사실이다. 씨앗이 금값보다 비싸다는 얘기다.

뒤늦게나마 종자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최근들어 정부는 물론 각 자치단체들 사이에 너도나도 ‘골든시드(Golden Seed) 프로젝트’라는 말이 유행처럼 회자되고 있다.

골든시드 프로젝트는 금보다 비싼 종자를 개발해 종자수출 2억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야심찬 신 연구개발 사업이다. ‘씨앗’이 ‘금’으로 변해버린 세상이다.

예전에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했던 우장춘 박사는 “종자는 이미 그 하나로써 우주다. 종자 없는 농업은 없다”면서 종자산업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과거와 같이 총칼에 의한 영토(식민지) 확장을 통해 자국의 잇속을 채우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한 나라의 문화가 ‘정신’을 지배하듯, 이제는 한 나라의 종자가 다른 나라의 ‘주권(主權)’까지 빼앗아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종자산업의 식민지화, 그래서 다가올 미래는 ‘종자전쟁의 시대’라고들 말한다.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됐다가 반출이 금지된 목화씨를 붓두껍에 몰래 숨겨 돌아왔다는 문익점의 전설 같은 얘기가 전설이 아닌 냉험한 현실이 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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