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기의 필담] 세상은 갑>을>병>정? ‘개훔방’도 약자는 아니었다

2015-03-0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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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포스터]

아주경제 권혁기 기자 = 사회적 우위에 있는 인물, 단체가 약자에게 횡포를 부린다는 일명 ‘갑질’의 형태가 ‘슬픔의 아이콘’이었던 ‘을’이 그보다 못한 ‘병·정’에게 이어져 씁쓸함을 자아내고 있다.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감독 김성호·이하 개훔방)의 배급사는 리틀빅픽처스, ㈜대명문화공장이다.

지난해 10월 출범된 리틀빅픽처스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처스, 명필름, 영화사청어람, 외유내강, 주피터필름, 케이퍼필름, 시네21, 더 컨텐츠콤, 그리고 ‘개훔방’의 제작사 삼거리픽쳐스가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당시 리틀빅픽처스는 “공공적 성격의 배급사를 지향한다”면서 “제작사의 창작성과 권리를 인정하고 더 합리적인 배급수수료를 책정할 것이다. 공정한 계약과 수익분배를 위해 노력, 더 합리적인 제작시스템이 마련될 수 있는 건강한 영화시장 조성에 힘쓸 계획”이라고 출범 의의를 밝힌 바 있다.

이어 “대기업 독과점과 수직계열화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대기업과 제작사가 6대 4로 이익을 나누던 환경에서 대기업이 제작사의 지분을 요구하면서 8대 2가 됐다. 제작사들이 영화 제작을 포기해야 하는 일까지 생겼다”고 영화 제작 환경에 대해 성토했다.

리틀빅픽처스는 지난해 7월 ‘소녀괴담’(감독 오인천)을 시작으로 11월 ‘카트’(감독 부지영), 구랍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지난 1월 ‘내 심장을 쏴라’(감독 문제용)를 배급했으며 4월 ‘화장’(감독 임권택)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삼거리픽처스 대표이자 리틀빅픽처스의 수장인 엄용훈 대표는 지난 1월 14일 페이스북에 배급사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카트’와 ‘개훔방’의 흥행 실패가 이유였다. 엄 대표는 사퇴의 변을 통해 “‘개훔방’이 정상적인 수준의 1/3 정도의 개봉관 밖에 확보하지 못하고, 그나마 조조 시간대와 심야 시간대에 편성을 받는 등 가족영화 장르로서는 매우 치명적이고 안타까운 상황에서 개봉을 시작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개훔방’이 CJ CGV, 롯데시네마 등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자회사 밀어주기’로 인한 피해자로 보였다. 틀린 말도 아니다. 분명 ‘개훔방’은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는 수작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훔방’이 다양성영화관을 중심으로 재개봉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9일 엄 대표는 “한국 영화 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연말연시의 영화 공급의 폭주로, 안타깝게도 상영관 확보를 충분히 하지 못한 관계로 영화 관람을 희망하는 수많은 영화 관객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라며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영화 관객 여러분. ‘개훔방’의 제작자로서 12일부터 본 영화를 우선 아트 영화관을 중심으로 재개봉 추진함을 공식 선언합니다”라고 밝혔다.

제작비 1~2억 수준의 예술성과 작품성을 중심으로 제작된 영화들을 상영하는 곳에 순제 25억여원의 상업영화 ‘개훔방’이 들어갔다는 것. 제작비도 제작비지만 개봉일인 지난 12월 31일 200개 이상의 스크린수를 확보했던 ‘개훔방’은 840회차 이하 상영돼야 한다는 기준에는 부합돼 다양성영화로 심사를 넣을 수 있었다.

상업영화가 다양성영화들 사이에서 경쟁을 벌인다는 것은 ‘조류인간’의 신연식 감독의 말처럼 “고등학생이 대학생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억울해 하면서 유치원 놀이터에 와서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다양성에 가치를 두고 독립영화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독립·예술영화관에서 특정 영화가 50개 이상의 극장을 점유하는 것은 그 자체로 다양성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라는 신 감독의 지적이 가슴에 와 닿는다.

‘갑과 을’의 문제가 ‘을과 병’ ‘병과 정’으로 이어진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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