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강승훈 기자 = 서울지역 38층 고층건축물에 불이 났을 때 소방대책은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심 내 건축물은 갈수록 고층화 및 복잡화되는 추세지만 오히려 소방당국의 관련 제도나 장비는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지적이 크다. 특히 최근 도심 고층 건물 화재 등 재해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피해건수 꾸준히 늘어
최근 3년간(2011~2013년) 고층건축물이 6% 늘었고 덩달아 이곳에서 화재는 33.7% 증가했다. 이 기간 11층 이상 건축물에서 일어난 화재는 1815건(연간 평균 605건)으로 전체 화재건수 1만6896건의 약 10.7%를 차지했다. 화재는 물론이고 재산피해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제도적 기반 시급해
'더욱 높게 높게'를 추구하는 서울의 도시특성을 반영한 소방안전관리의 제도적 기반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정작 고층건축물의 화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는 어디에도 없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작년 상반기 중 '서울특별시 고층건축물 소방안전관리 조례(가칭)' 제정에 나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백지화시켰다. 내부 검토 과정에서 서울시 규제개혁위원회가 전반적 보완을 통보해온 것이다. 조례의 주요 내용이 건축법에 해당돼 해당 협회 등으로부터 우선 의견을 들으라는 게 이유다.
예컨대 건축물 용접, 용단 작업시 사전 신고를 비롯해 설계 때 소방차의 원활한 접근 및 소방활동 고려 등이다. 그해 9월 건축사협회는 이 같은 사안들이 건축법 소관인 탓에 조례로 규정할 수 없다고 서울시에 회신했다. 관련 조례 제정이 불필요하다고 일축시킨 셈이다.
서울소방재난본부 담당자는 "당초 지난해 입법계획을 수립하고 법제심사를 거쳐 시의회 의결까지 마칠 계획이었지만 시작 단계인 규제개혁위원회부터 제동이 걸렸다"며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라 조례를 재추진할 명분 자체가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안전장비는 구식(?)
그렇다고 화재를 전담하는 장비가 제대로 갖춰진 것도 아니다.
서울소방재난본부의 고층건축물 화재대응 장비 현황을 보면 △펌프차 119대(소형 37대·중형 82대) △고가차 25대(55m 1대·53m 7대·52m 이하 17대) △굴절차 26대(45m 1대·41m 3대·27m 이하 22대) 등 모두 170대를 확보했다.
이 중 고층부까지 송수 가능한 펌프차는 24대가 고작이다. 이 역시도 38층, 128m 높이까지만 물을 보낼 수 있을 뿐이다. 38층을 넘는 높이에서는 건물 자체의 소방 장비나 인력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도심 내 40층 이상 건축물은 57개동으로 이 모두가 소방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더욱이 고층건축물 화재진압 등에 쓰이는 다목적 헬기의 경우 도입된 지 20년이 훨씬 지나 대체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런 첨단장비를 구매하는데 많은 예산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옥외 송수구를 통해 최대 400m까지 송수할 수 있는 소방펌프시스템인 CAFS(Compressed Air Foam System)는 대당 가격이 3억원을 초과한다. 고성능 고가차 또는 굴절차 또한 적게는 대당 5억원에서 7억원에 이른다.
서울시는 올해 고층건축물 화재대응 장비를 사들이기 위해 25억여 원의 예산을 편성했지만, 매칭으로 비용을 보탤 정부측이 관망하는 자세를 취해 제자리 걸음이다. 국비를 내려달라고 애타게 손을 벌린 서울시와 달리 돈줄을 쥔 기획재정부에서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모양새다.
서울시 관계자는 "소방장비 확보는 전적으로 매칭사업이기 때문에 정부의 교부금이 없으면 어떤 실적도 낼 수가 없다"면서 "현재 서울의 화재대응 장비는 부산 등 지방에 비해서도 그 수준이 현격하게 떨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