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일본업체들의 기술개발 방해는 있어왔다. 하지만 과거에는 거액에 독자 기술의 일부를 제공해 한국기업들을 자신의 그늘아래 두는 전략을 취한 반면, 최근에는 한국 기업들의 기술 개발 능력이 큰 폭으로 향상돼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자 아예 가격을 인상 또는 인하하면서 상업화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한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26일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협력해 장비 국산화 기술 개발을 진행하는데 일본의 원천기술 업체가 이를 알면 공급가격을 갑자기 올려서 압박을 주거나 가격을 내려 국산 기술이 상용화되지 못하게 한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일본 장비와 기술 및 원가경쟁력이 같아질 때까지 양산에 들어가질 못하고 비밀리에 개발해야 한다”며 “제품 양산이 지연돼 연구개발(R&D) 투자금 회수기간이 오래 걸리는 등 국산화 개발은 험난했지만 시련을 딛고 현재 상당 부분 국산화가 이뤄져 한국이 디스플레이 강국이 됐다”고 전했다.
LG디스플레이는 상시적으로 신기술 장비 공모제도를 운영해 개발비를 지원하면서 장비 업체와 공동 연구를 진행, 다수의 액정화면(LCD) 핵심 장비 국산화에 성공했다.
일례로 LG디스플레이의 대표 협력사인 탑엔지니어링이 일본 기업이 독점하던 LCD 유리기판 절단 장비를 국산화해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LG디스플레이는 중소기업들에게 유휴특허의 소유권을 무상으로 이전하는 등 대중기 특허 공동 개발 및 공유 활동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R&D 펀드를 조성하는 등 2010년부터 중소 협력사와 국산화 프로젝트를 진행해 200여개의 기술 국산화에 성공, 해당 협력사는 1300억원의 매출을 창출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에도 공동 R&D 프로젝트를 진행할 대상을 기존 협력사에서 여타 중소기업으로 확대하는 등 장비 국산화에 적극적이다.
R&D를 통해 대기업에만 의존하는 단순 가공업에서 탈피하고 자생력을 기르는 중소업체들도 늘고 있다. R&D를 강조하는 사회기조 속에 정부와 대기업 상생 지원, 중소기업 자구노력 등이 골고루 자양분이 되고 있는 듯 보인다.
모바일 산업은 시장 경쟁 심화로 저성장이 고착화돼 부품 중소업체들이 전방 제조사보다 더 큰 경영난을 겪고 있다. 그런데 개중에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며 활로를 개척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휴대폰 부품업계 관계자는 “중소 부품업체들이 대기업 물량만 소화해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지만 국내 인건비가 상승하고 제조사의 공장이 중국과 베트남으로 이주하면서 생존에 대한 위기감이 번졌다”며 “이후 자체 개발팀이나 연구소를 지어 R&D 투자를 늘리는 부품업체가 늘어났고 최근 전자부품의 채택이 많은 자동차 등 이종산업으로의 사업 다각화가 활발해졌다”고 전했다.
그는 “자동차나 휴대폰이나 생산 현장에 가보니 기반 기술이 크게 다르지 않더라”며 “기술 역량만 갖추면 생존의 길이 있다”고 강조했다.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 등 다양한 디바이스 및 솔루션이 요구되는 차세대 시장에서는 이러한 중소기업이 핵심이다. 무수히 많은 디바이스 부품 수요를 소화하는 데 대기업보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수월한 중소기업이 적합해서다.
이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기술협력 모델은 최근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삼성과 SK, 포스코, 현대차, LG, 한화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지역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해 성장 잠재력이 큰 기술 벤처를 발굴하고 나선 게 대표적이다.
정부와 민간의 창조경제 활성화 노력이 더해져 벤처 창업 열기도 후끈하다. 중소기업청은 이달 국내 벤처기업 수가 사상 최초로 3만개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2006년 1만2218개에서 2배 이상 늘어난 수치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소재부품 무역흑자가 1000억달러 시대에 진입한 것으로 집계했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 전자부품이 최대 흑자품목이며, 최근 들어 수송기계부품, 전기기계부품, 화학소재 등도 흑자품목으로 부상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