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고용시장, 개혁만이 살 길-1] 비정규직 보호할 '한국형 개혁모델' 필요

2015-01-1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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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신희강 기자 = “계약직 신분이 문제가 아니라 계속 일하고 싶다.”

최근 대한민국 근로자의 애환을 뜨겁게 반영한 드라마 ‘미생’ 주인공인 '장그래'의 극 중 혼잣말이다.

정부는 올해 핵심 국정과제 가운데 최우선 과제로 '고용시장 개혁'을 꼽았다.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현재 왜곡된 고용시장을 우선적으로 손 보겠다는 것이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인사를 통해 "고용시장의 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전략"이라고 밝혔듯이 올해 고용구조의 대대적인 수술이 예고되고 있다.

특히 고용개혁의 가장 핵심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장그래와 같은 이 땅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한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고용개혁의 선진사례로 꼽히는 영국과 독일 등의 사례를 바탕으로 오는 3월까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등 정부의 고용개혁 어젠다에 대한 노동계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단순히 해외사례에 맞춘 보여주기식 고용개혁이 아닌 한국 노동자들이 공감할 만한 확실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가운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한 '맞춤형 구조개혁 모델'이 추진되야 한다는 얘기다.

 

 

◆비정규직 문제 개선, 고용시장 개혁의 출발점

최근 국내 고용시장에서 비정규직 비중은 감소 추세이지만, 여전히 높은 임시직 비중으로 인한 고용불안과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현재 비정규직은 607만7000명으로 전체 임금 근로자의 32.4%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이 중소기업, 여성, 고령층에 집중돼 있는 실정이다.

전체 임금 근로자의 608만명이나 되는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64%에 불과한 실정이다. 장그래와 같이 청년 취업자 5명중 가운데 1명은 1년 이하의 계약직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등 청년층의 고용불안도 심각하다.

통계청의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하고 처음 가진 일자리가 1년 이하 계약직이었던 만 15∼29세 청년은 76만 1000명이었다. 이는 전체 청년 취업자의 5명중 1명이다.

이 비중은 2008년 11.2%, 2009년 12.4%, 2010년 16.3%, 2011년 20.2%로 급격히 증가했으며, 2011년부터는 4년째 20%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규직 일자리가 단기 계약직으로 대체되는 현상이 두드러진 가운데, 청년층의 고용 불안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 전환비율도 기대치를 밑돌았다. 지난해 10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2013년 비정규직 이동성 국가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비정규직이 1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11.1%에 불과했다.

비록 3년 뒤에는 22.4%로 올랐지만, 비정규직이거나 실업자가 된 비율은 57.6%로 절반을 넘어섰다. 10명 중 단 1~2명만 정규직으로 전환된 셈이다.

2013년 초 공공부문에 속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약 6500명이 계약만료로 대량 해고되는 등 대량해고도 여전한 상태다.

여전히 우리 고용시장에서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큰 폭의 임금격차(근로조건) 등 비정상적 관행이 상존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정부, 비정규직 종합대책 내놨지만...현실적 대안 없어

정부는 지난해 29일 근로자의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최대 4년까지 늘리는 골자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고용시장에서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유인을 줄이고, 정규직 채용 여력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안에 호봉제 임금체계를 직무 성과급으로 개편하고, 근로시간은 총량을 감축하는 등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체제를 반전시키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임금체계는 연공서열을 완화하면서 직무성과 중심으로 합리화하고, 근로시간 총량은 인력운용의 유연성과 합리성 확보를 위해 기준을 명확히 하기로 했다.

또 대·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을 도모하고, 고용 형태별 특성에 따라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위한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일자리를 줄이지 않으면서 근로자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제도와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아울러 기업의 정규직 채용문화 확산과 정규직 전환 기회 제고 등 실질적인 고용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와 관행을 개선한다는 구상이다. 상시·지속적 업무는 가급적 직접 채용토록 하고, 기간제·파견제도는 당사자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개선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이번 종합대책이 오히려 ‘비정규직 양산대책’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현행법상 2년이면 정규직 전환이 가능한데 이를 4년으로 늘린다는 것은 오히려 비정규직 죽이기와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정부의 대책안에 55세 이상 고령자에게 파견을 전면 허용해 이직수당을 주고, 3개월 이상 근무한 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주는 방안, 차별시정 제도를 노동조합에 부여하는 방안 등이 담겨 있어 '장그래 죽이기 법'에 불과하다는 질타도 나온다.

노동계는 정부의 고용개혁이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는 시장 교란정책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지난 2009년 나온 '정규직 과보호론'에 입각한 재탕에 불과한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역시 고용 규제만 강화해 기업 부담을 늘리는 현실성 없는 대책이라는 입장이다. 기업으로서는 비정규직을 늘리는 대신 정규직 해고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노사가 공감하는 근본적 정책 필요

전문가들은 비정규직 확대는 선진국에서도 오래전부터 일반화한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하르츠 개혁'으로 알려진 독일의 경우 한국 노동계에 적지않은 시사점을 준다고 강조한다.

실제 독일의 성장률과 실업률은 1992년 각각 1.5%와 6.3%에서 1999년 1.8%, 8.1%까지 치솟았다. 이에 독일 고용시장 개혁위원회는 △해고보호 완화 △기간제근로자 사용기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 △신규채용시 수습기간 6개월에서 2년으로 연장 등이 담긴 고용 대책을 내놨다.

이후 독일은 하르츠 개혁으로 2008년 고용률 70% 달성에 성공함은 물론, OECD로부터 ‘일자리 기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선진국들의 사례를 국내적 특수성에 맞춰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제언한다. 주요 선진국의 구조개혁 사례를 참고하되, 한국형 구조모델에 맞는지 명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오는 3월 사회적 대타협을 앞두고 정부와 재계, 노동계 등 충분한 의견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사정 모두의 양보와 연대정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기업도, 노조도 이제는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그간의 교섭관행을 넘은 선진화된 노사관계를 갖는 방향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예컨데 10년 만에 노사가 타협점을 찾은 ‘코오롱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비정규직 차별화로 대표되는 고질적인 고용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질 좋은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가 어렵다고 설명한다.

민간경제연구소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 대책이 과제별로 사안이 다르다는 점에서 정부와 재계, 노동계 등 충분한 의견수립이 필요하다"면서 "노·사·정이 진정성 있는 신뢰를 바탕으로 진정한 사회적 대화의 전통을 만들어나간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또 사회적 대화가 대기업과 대기업 노동자 간에만 이뤄지는 것이 아닌 비정규직과 청년·여성 등 취약계층의 목소리 또한 적극 반영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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