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방송된 MBC ‘서프라이즈’에서는 쇼팽에 대한 일화가 공개됐다. ‘서프라이즈’에 따르면 쇼팽은 1849년 10월 30일 프랑스 파리 페르 라셰즈 묘지에 묻혔다.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던 프레데리크 쇼팽의 시신에는 심장이 없었다.
쇼팽의 누나 루드비카는 “네가 그토록 원하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어 기쁘다. 하늘에서 편히 쉬렴”이라며 쇼팽의 심장이 담긴 가방을 어루만졌다.
이에 앞서 한 달 전 폐결핵에 걸려 죽음을 직감한 쇼팽은 루드비카에게 “고향은 그대로겠지? 폴란드를 떠난 지 19년째지만 아직도 눈앞에 선해. 고향을 떠날 때 스무 살이었는데 그때가 고향에서의 마지막일 줄 몰랐어”라고 말했다.
이후 쇼팽은 연주회를 빌미로 여권을 되찾아 프랑스로 향한 후 다시 폴란드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번번이 러시아의 방해로 무산됐다.
비록 몸은 폴란드에 갈 수 없었지만 쇼팽은 빠른 템포에 격정적 리듬의 ‘혁명 에튀드’를 작곡, 독립을 향한 굳은 의지를 표현했다. 연주회 수익 절반을 폴란드 독립운동 자금으로 기부했고, 틈틈이 폴란드인을 위한 자선 음악회를 개최했다.
1844년 쇼팽은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아버지 미하우가 지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쇼팽은 폴란드로 향하지만 아버지의 장례식조차 참석할 수 없었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폴란드 독립에 힘을 쓰던 쇼팽은 누나 루드비카에게 “꼭 폴란드에 묻히고 싶다. 마지막 소원이야”라며 “심장이라도 폴란드에 묻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독립운동이 다시 불붙게 될 것을 우려한 러시아는 시신의 입국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비밀리에 쇼팽의 심장을 적출한 루드비카는 쇼팽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심장을 들고 폴란드에 입국했다. 루드비카는 쇼팽의 심장을 폴란드 바르샤바에 위치한 성 십자가 성당에 묻었다. 이 때문에 쇼팽의 무덤은 프랑스, 폴란드 두 곳에 남겨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