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15일 북한 보위사령부의 지령을 받고 탈북자로 신분을 위장해 국내에 잠입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모(39·여)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유죄로 인정된 공소사실에 따르면 2012년 6월 보위부 공작원이 된 이씨는 탈북자 출신 반북 활동가 최모씨의 동향을 파악하라는 지령을 받고 그해 12월 중국과 태국을 거쳐 국내로 들어왔다.
이씨는 기억을 지우는 '거짓말탐지기 회피용 약물'을 사용해 국가정보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실시한 심리 검사를 무사히 통과했으나 집중 신문 끝에 공작원 신분을 실토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1심은 이씨가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따라 범행을 저질렀고 수사기관의 추궁에 못 이겨 자백했을 뿐 자수한 것은 아니라며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2심 판단도 같았다.
상고심에서 사선 변호인을 선임한 이씨는 수사기관이 간첩 사건을 조작했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는 '거짓말탐지기 회피용 약물'이 존재하지 않았고 국정원 합신센터에서의 자백도 거짓이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으나 인정되지 못했다.
재판부는 "합동신문센터 수용에서 원심에 이르기까지 이씨가 자백을 유지한 제반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이씨의 자백 진술에 임의성이 없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고 자백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 측 변호인이 이씨 자백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근거로 내세웠던 거짓말탐지기 회피 약물 사용과 관련해서도 "기록상 드러나는 판정결과의 다의성, 과학적 정확성 논란 등을 고려하면 이로 인해 이씨의 자백이 신빙성을 잃는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날 대법원 판결 후 이씨의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박준영 변호사는 "파기환송을 기대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잘못된 판단을 받은 것 같다"며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은 역사가 다시 한 번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또 "거짓말탐지기 회피용 약물, 즉 기억을 사라지게 하는 약물을 보위부가 지급했다는 건데 과학계와 의료계에서는 그런 약물은 세계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