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나 오늘의 번영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계기 역시 ‘배워야 산다’ 하는 단순한 가르침이 피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인격의 완성을 위하여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키우며 노력하여 대의를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정신이 선비정신이다. 이는 고려시대엔 낭가사상으로 불리어 국난(國難)의 시기엔 전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이민족의 침략을 물리쳤으며, 또한 우리 몸에 흐르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과도 무관치 않다. 청빈하게 살아 가난해도 결코 부(富)를 부러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은 민족이 지구상에 어디 있겠는가.
이는 일찍이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1900~1980)이 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는 경제적으로 잘사느냐 못사느냐가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이 ‘소유가치(to have)’를 추구하느냐 ‘존재가치(to be)’를 추구하느냐로 가름 된다고 말한 것은 우리민족의 ‘선비의 삶’에 대한 적확(的確)한 표현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적 양상에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선비는 각 시대에서 지도자적 구실을 하는 지성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해 왔다. 전통사회에서의 선비는 분명히 그 시대의 양심이요 지성이며 인격의 기준으로 인식되어 왔던 것이다.
선비는 처음부터 학문으로 확립한 신념과 포부를 가지고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삶인 만큼, 선비의 관직에 대한 태도는 관직을 통하여 자신의 학문과 신념을 펴는 것이다.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한 과제이기도 한 참다운 한국인상과 공직자상의 정립을 위하여서도 선비는 우리가 따라야 하는 바른 삶의 모습인 것이다.
오늘날 근대화의 과정에서 서구사회의 시민윤리의 근간이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감(NOBLESSE OBLIGE)이라면, 우리에게는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선비정신이 있기에 부패한 기득권 세력을 제거하고 구악을 일소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혁명은 보이는 적을 물리치면 되는 것이지만, 개혁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군자(君子)와 소인배(小人輩)를 구별하여 소인배를 물리치는 것으로 개혁은 성공된다.
과거 우리의 선비들이 도리(道理)가 무엇이었는지를 안 것과 같이 민주주의 정치 체제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선비란 무엇인가.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는 자애로우며, 공명하고 정대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몸소 몸을 던져 실천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