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21세기 브레이브하트의 탄생은 없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 최종 개표 결과 55.3%가 반대표를 던져 찬성표(44.7%)를 앞선 것으로 집계되면서 307년만에 영국 연방과 결별하고 독립국으로 자립하려던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꿈은 무산됐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이 부결되면서 영국 연방체제의 분열을 막아낸 영국 정부는 한숨을 돌리게 됐다. 하지만, 스코틀랜드발(發) 후폭풍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주민투표 전 자치권과 예산을 대폭 확대시켜주겠다며 찬성표 저지 목적의 공약을 내걸었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이끌었던 앨릭스 새먼드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당수 겸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선거 패배를 인정하면서 “영국은 스코틀랜드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며 “이러한 약속이 신속하게 이행돼야 한다”고 자치권 확대 절차 착수를 거듭 촉구했다.
이에 영국 중앙의회 주요정당들은 스코틀랜드 지방정부에 권한을 대폭 이양하기 위한 절차에 곧바로 착수해야 할 운명에 처해졌다.
가장 관건이 되는 것은 영국 정부가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요구를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 가다. 하지만, 주민투표를 승인해 준 탓에 영국을 분열위기로 몰아넣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캐머런 총리의 정국 장악력이 약화된 데다, 자치정부의 권한을 확대할 경우 중앙정부로서는 최대 수십억 파운드의 세수 감소를 감내해야 하는 점 등으로 의회의 승인을 얻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영국의 이번 자치권 확대 결정으로 당장 영국 내에서는 스코틀랜드 외에도 웨일스와 북아일랜드 자치정부가 덩달아 자치권 확대를 강력히 요청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자치권 상당 부분을 스코틀랜드에 내줘야 하는 영국 정부는 11월까지 스코틀랜드에 대한 자치권한 이양 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법안을 내년 1월 말쯤 의회에 상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여파는 영국 연방정부의 위상에도 변화를 일으킬 전망이다. 이미 장기적으로 해체 위기에 몰렸던 데다가 의회를 통해 상당한 자치권을 보장받은 스코틀랜드의 독자적 행보가 더욱 강화될 예정인 만큼 영국의 위상이 기존과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통신은 “독립을 주장했던 알렉스 새먼드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당수 겸 자치정부 총리가 투표에서는 패배했지만 실질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영국 중앙정부로부터 조세권과 예산권을 대폭 넘겨받는 자치권 확대 약속을 얻어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와 함께 스코틀랜드발 독립열풍이 스페인과 벨기에 등 다민족으로 구성된 다른 유럽 국가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긴장감이 확산되고 있다.
오는 11월 스페인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카탈루냐주를 시작으로 일부 유럽국가들은 '스코틀랜드 모델'을 본보기로 삼아 독립 촉구의 목소리를 높여갈 것으로 예상된다.
벨기에에서 독립을 원하는 플랑드르 지역의 지도자도 이날 "스코틀랜드에서 독립이 추진됐다는 점이 중요하다"면서 "자치와 정체성을 요구하는 주장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스코틀랜드 또한 이번 주민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독립안이 부결되면서 10~15년 안에 또 다른 주민투표 시행 요구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이와 관련해 "다민족 국가에선 스코틀랜드 독립투표 실시를 계기로 독립요구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고 전했다. 또 "분리독립 문제를 안고 있는 국가들이 스코틀랜드 투표를 통해 적지 않은 교훈을 얻었다"며 "이 때문에 영국과 달리 미리 강력한 정책을 통해 독립 움직임을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밖에 스코틀랜드 내 찬반 세력간 갈등, 스코틀랜드와 영국과의 갈등이 투표 이후에도 지속되는 분위기여서 이를 어떻게 치유하느냐 하는 과제도 남겨져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