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첫날 단체상봉행사에 이들 최 씨 형제들을 비롯해 전시납북자 2명이 가족 상봉에 나왔다.
최영철씨는 형 최선득 씨를, 1970년대 서해상에서 조업 중 북한으로 끌려간 납북 선원 박양수(58)씨는 동생 박양곤(52)씨를 각각 만났다.
최영철 씨는 이날 상봉에서 나이가 10살이나 많은 맏형 선득 씨를 만나 분단과 헤어짐의 아픔을 달랬다.
선득 씨는 동생에게 남쪽의 두 형과 세 여동생, 그리고 조카의 소식을 전했고 영철 씨는 북한에서 결혼한 부인 박순화(60)씨를 형에게 소개했다.
이날 상봉에서 둘째 형 영득(72)씨의 장남인 조카 최용성(43)씨는 생면부지의 삼촌에게 쓴 편지에서 남쪽의 추석표정과 가족 전체를 일일이 소개하고 "우리 모든 가족들은 작은 아버님의 모습과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며 "항상 복된 생애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선득 씨는 상봉에 앞서 19일 가진 사전인터뷰에서 "당시 외양어선을 타면 돈이 좀 됐고 고등학교는 당시 생활로는 가기가 힘들어서 갈 생각을 못했는데, 딴에는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학교 갈 생각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납북선원 박양수 씨도 동생 양곤씨를 만났다. 박 씨의 부모와 큰 형은 모두 사망했다.
양곤 씨는 42년 만에 만난 형을 꼭 끌어안으며 "고맙습니다. 얼굴을 뵙게 해주셔서…"라며 격해진 감정에 말을 잇지 못했다.
양곤 씨는 형에게 남쪽 소식을 생생히 전하기 위해 돌아가신 부모님과 큰형의 묘소 사진, 가족 사진, 고향마을 풍경 사진을 챙겼고 내복 등 의류와 생활필수품을 선물로 준비했다.
전시납북자로 인정된 북한의 최종석(93)씨와 최흥식(87)씨도 이번 상봉대상에 포함됐으나 모두 사망해 각각 남쪽의 딸 최남순(65)씨와 아들 최병관(68)씨가 북쪽의 이복형제와 만나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전해들었다.
납북선원 박양수 씨는 박 씨를 포함한 쌍끌이 어선 오대양 61호, 62호의 선원 25명은 1972년 12월28일 서해상에서 홍어잡이를 하던 중 납북됐고, 최 씨가 탔던 수원 32호와 33호도 백령도 인근에서 홍어잡이를 하다가 북한 해군의 함포 사격을 받고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다섯살이었던 아들이 흰머리가 성성한 60대 노인이 돼 아흔의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흔의 아버지는 밀려드는 회한에 "미안하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전쟁통에 헤어진 부모와 자식이 60여 년 만의 재회다.
김영환(90) 할아버지는 북녘에 두고 온 아내 김명옥(87) 씨와 아들 대성(65) 씨를 만났다. 이번 상봉단 82명 가운데 배우자를 만난 것은 김 할아버지가 유일하다.
김 할아버지는 6·25 때 인민군을 피해 혼자 남쪽으로 잠시 내려와 있다가 가족과 헤어졌다. 당시 아들 대성 씨는 5살이었다. 김 할아버지는 이후 남쪽에서 결혼해 4남1녀를 뒀다.
김 할아버지와 이번 상봉에 동행한 아들 세진(57) 씨는 "아버지는 북쪽 가족들에게 젊을 때 그렇게 헤어졌다는 미안함을 안고 살았다"며 "가족들을 만나면 보고싶고 안아주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라고 말했다.
이날 상봉에서는 남측 이산가족 12명이 부부·자식, 47명이 형제·자매, 23명이 3촌 이상 친지를 각각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