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해당 기록을 중국에서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발급받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유씨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검찰이 고의로 증거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은 유씨의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작년 10월 중국 허룽(和龍)시 공안국이 발급한 유씨의 출입경기록(2006년 1월~2012년 2월) 2부를 담당 검사에게 전달했다.
한 부는 허룽시 공안국 관인이 찍힌 출입경기록이고 다른 한 부는 이 관인에 더해 허룽시 공증처 관인까지 찍혀 있는 것이었다.
검찰은 국정원이 제출한 출입경기록이 실제 허룽시에서 발급한 기록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외교부를 거쳐 선양(瀋陽) 주재 한국영사관을 통해 허룽시 공안국에 사실조회를 요청했다.
이어 11월 말께 '허룽시 공안국은 출입경기록을 발급해 준 사실이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수신했다. 검찰은 12월 6일 항소심 3차 공판에서 이 사실조회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검찰은 내사 당시 국정원 첩보로 유씨의 출입경기록을 입수했으나 중국 관공서가 발급했는지 확인할 수 없어 증거 능력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항소심 진행 과정에서 국정원이 또다시 유씨의 출입경 자료가 첨부된 영사인 증서를 보내왔으나 역시 관공서 발급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증거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검찰 관계자는 "다양한 자료 중 가장 객관적이고 증거능력이 있다고 인정된 것을 법원에 제출했다"며 "해당 자료는 발급 기관이 명시됐고 문서 형태도 갖춰져 있으며 내용도 합리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민변은 검찰이 공소유지를 위해 위조된 증거를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씨가 1심에서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자 이를 뒤집으려고 무리수를 뒀다는 것이다.
민변은 검찰이 허룽시 공안국에서 발급받았다는 기록의 작성 양식, 도장 위치, 팩스 번호 등이 정상적인 형태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일부 공문서에 나타난 문법 오류를 언급하기도 했다.
민변은 "검찰 측이 제출한 기록은 위조된 것임을 단박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조악한 수준이었다"며 "수사단계에서부터 원본을 입수한 검찰이 위조 사실을 몰랐을리 없다"고 강조했다.
민변은 "지난달 초 성명불상자를 국보법상 무고·날조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한 바 있다"며 "경찰과 검찰이 이 사건 증거 위조 여부를 의욕을 갖고 수사하지않을 경우 특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서울고법 형사7부는 작년 12월 23일 변호인의 요청을 받아들여 검찰이 제출한 출입경기록의 진위를 확인해 달라는 사실조회서를 중국 대사관에 보냈다. 대사관은 지난 13일 "검찰이 제출한 허룽시 공안국의 출입경기록 조회결과는 모두 위조
된 것"이라고 회신했다.
대사관은 검찰이 해당 기록을 정상적인 경로로 발급받았다며 제출한 확인서마저 위조됐다고 전했다. 이어 공문 위조가 형사 범죄에 해당한다며 법에 따라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이에 "재판부에 제출한 기록은 중국 기관이 정상적으로 발급한 문건으로, 현 단계에서는 위조를 단정할 수 없다"며 "다만 중국 정부가 요청하면 위조 여부를 규명하는 데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은 사후적으로 증거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면서도 국정원이 기록을 입수한 경로, 국정원 측의 위조 여부 등에 대해선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진태 검찰총장은 "이번 사안이 검찰의 신뢰와 직결된다는 심각한 상황 인식하에 유관기관과 협조해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하고 위법행위가 드러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을 대검 공안부와 서울중앙지검에 지시했다
"고 말했다.
화교 출신인 유씨는 북한 국적의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입국, 북한 보위부의 지령을 받고 여동생을 통해 탈북자 200여명의 신원 정보를 북한에 넘긴 혐의로 작년 2월 구속기소됐다.
유씨의 간첩 혐의를 뒷받침하는 유일하고 핵심적인 증거는 그의 여동생이 국정원 합동신문센터 등에서 한 진술이었다. 1심은 유씨 여동생의 진술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여권법과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유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에 불복해 항소한 뒤 유씨의 출입경기록 등을 추가 증거로 제출했다.
항소심 다음 재판은 오는 28일 오후 3시에 열린다. 북·중 출입경 업무를 담당했던 조선족 임모씨와 중국 현지를 취재한 한겨레신문 허모 기자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