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인재혁신과 채용-1] ‘총장’에 매달리고 싶지 않은 젊은이들

2014-02-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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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채명석ㆍ이재영ㆍ이혜림ㆍ박현준 기자 = “총장추천제는 총장의 힘으로 뽑히는 이른바 ‘낙하산’이 존재하게 된다. 모두에게 기회가 평등한 것이 아닌, 총장과 아는 사이, 높은 성적을 지닌 이에게만 기회가 한정되고, 또한 기업 역시 다양한 인재를 선발하기 어렵다.”

삼성그룹의 총장추천제 유보와 관련해 구직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젊은이들은 만약 제도가 예정대로 시행됐다면 추천장이라는 헤게모니를 둘러싼 이권 다툼의 장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사실 삼성이 총장추천제 시행을 추진한 또 다른 이유는 갈수록 존재감이 희석되고 있는 대학교육제도의 위상을 바로잡기 위함이었다. 취업이 잘되는 인기 학과에만 학생들이 몰리고, 전공 공부보다는 토익 등에만 열을 올리는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또 하나의 사회라고 볼 수 있는 학교생활에 충실케 하고, 인성을 기른 인재를 키워내고자 함이었다. 이러한 제도가 바로 잡혀야 대학은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에게도 양질의 인재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본질은 왜곡됐고, 삼성은 커다란 반대에 막혀 이를 유보해야 했다. 젊은이들이 보내온 답변지는 삼성에 대한 비판 못지않게 총장과 교수, 대학을 믿지 못한다는 의견을 상당량 담고 있다. “우리나라는 각 대학 총장이 어떤 기준으로 학생을 추천할지, 뒷돈을 받지 않을지 등 기본적으로 사람을 잘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 현장이 총장과 대학 학벌에 의해 획일화될 우려가 크다. 안 그래도 취업난 속 대학 교육의 현장에서 자유로운 지적탐구가 사라진 지 오래다.”

“학벌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우며, 추천을 빙자한 사적 인맥에 의한 채용의 우려가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학교에서의 우수한 인재와 기업에서의 우수한 인재가 다르다는 것이다.”

“학연과 지연이 팽배한 우리나라에서 인맥의 유무가 중시될 수 있고 활동이나 추천 과정상의 비리 또한 발생할 수 있으며, 다양한 활동보다 보여주기 활동에 치중할 수 있고, 개인에게 붙어 요행을 바랄 수도 있다.”

“한 명의 주관적 평가에 의존함으로써 발생할 각종 부정부패 위험도 함께 존재한다.”

한창 꿈을 키우며 능력을 키워야 할 젊은이들이 이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삼성, 또는 다른 대기업들이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든다더라도 불신의 벽을 넘어서기란 쉽지 않다. 결국, 총장과 교수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재만 뽑아 추천할 것이라는 점은 우려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마라’는 옛말처럼 가장 예와 의가 지켜져야 할 학교 사회에서 제자가 스승을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원인을 삼성이라는 개별 기업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삼성의 책임을 논하기에 앞서 대학, 더 나아가 한국 사회가 먼저 반성해 봐야 할 대목이다. 현재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거나 재학 중인 학생들은 이미 유아 시절 유치원 입학 때부터 경쟁을 해야 했고 이를 통해 서열화를 접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서열화는 더욱 굳어졌고 사회 진출을 눈앞에 둔 대학은 서열화의 완결판이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학교는 교육을 받고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전당이 아닌, 인생을 편하게 살 수 있는 ‘간판’ 정도로 여기게 됐다.

이런 의식을 파괴해야 할 교육계는 오히려 서열화를 부추겼다. 서열화가 구축되는 과정에는 학연·지연·혈연이라는 고질적인 인맥 문화가 개입된다.

창의적 인재에 대한 필요성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이러한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획일화된 교육 환경에 지친 대다수 국민은 창의적 사고력과 거리가 멀다. 주입식으로 10년 넘게 교육을 받아온 사람에게 스스로 생각하기란 매우 어려운 문제다.” 구직 활동을 하는 젊은이가 자신을 스스로 이렇게 말했을 정도니, 그 수준은 심각하다.

이러니 총장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리 없다. 젊은이들은 교수와 총장, 학교는 자신들의 숨겨진 재능을 깨워주고 도움을 주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 총장이 삼성의 추천장을 쥐고 있다. “우리 사회의 성공 지표는 ‘연봉’을 얼마 받는가와 ‘대기업’에 근무하는 가로 판단된 지 오래다”, “삼성에 입사했다는 사실만으로 인생의 절반을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삼성 취업의 길(추천장)을 잡고 있는 총장은 위협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답변을 보내준 젊은이들은 모두 ‘기업의 채용방식은 기업 고유의 권한이다’는 점을 인정했고, 총장추천제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라는 의견을 많이 보내왔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시행하느냐는 방법론을 구체화하기도 전에 예상치도 못했던 서열화, 학연·혈연·지연 문제를 지적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삼성과 함께 대학이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을 강력히 주장했다.

한 젊은이는 “삼성이 사회적 기업이나 공기업도 아닌데 새 채용방식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는 이유만으로 전면 보류한 사실은 해외토픽감이다”면서, “총장추천제를 비롯한 채용제도의 불합리성을 따지기에 앞서 한국 사회에 만연된 불신 풍조에 방점을 찍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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