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저축은행 사태 때부터 지적됐던 금융당국 출신 사외이사 선임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 특히 금융당국의 제재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금융감독원 및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공직자를 선호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6일 금융감독원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대규모 기업집단(2012년 말 기준 자산총액 5조원 이상)에 속한 상장사 가운데 총 15개사가 지난해 주주총회를 통해 금감원과 공정위 출신 사외이사(16명)를 선임했다.
공정위 출신은 총 9명으로 이들은 위원장(1명), 상임위원(3명), 부위원장(3명), 사무처장(2명)을 역임한 경력이 있다. 금감원 출신은 총 7명으로 위원장(1명), 부원장(2명), 위원(2명), 국장(1명), 팀장(1명) 등이다.
현대제철은 작년에 신임 사외이사로 정호열 15대 공정거래 위원장을 선임했다. 동부화재해상보험 또한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과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낸 박상용 율촌 고문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현대산업개발은 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을 사외이사로 뒀고 현대증권은 박광철 전 금감원 부원장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했다. 이어 HMC투자증권에는 송경철 전 금감원 부원장이 사외이사로 몸담고 있으며 동부씨엔아이, 롯데제과, 롯데쇼핑, 현대비앤지스틸 등이 금융당국 출신을 사외이사로 뒀다.
박세연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대개 회사가 시장의 공정거래질서를 저해해 금융당국의 반복적인 제재가 이뤄질 경우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고위 공직자를 선임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출신 사외이사를 선임한 15개사 중 12개사가 소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8개사는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은 상태다. 일부는 무효신청을 위한 소를 제기해 계류 중에 있다.
동부화재 종속기업인 동부생명이 계류 중인 소송은 총 76건에 달하며 작년 9월에는 보험계약 비교안내 미이행 등으로 금감원의 문책을 받았다. 현대증권의 작년 9월 말 기준 지배회사에 계류 중인 소송사건은 총 16건으로 소송액은 800억원 남짓이다. HMC투자증권은 2011년 이후 매년 기관 주의와 경고를 받았다.
민주당 오영식 의원실 나성채 비서관은 "공공기관의 사외이사 문제보다 상장사가 더욱 심각하다"며 "경영진 감시라는 본래 역할을 망각한 채 방패막이 또는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사외이사 대부분이 학계 및 정부 고위관료들로, 안건심사도 몇 차례 안 되는데 집행부의 눈치를 보며 수억원을 가져가고 있다"며 "회사 측 이익을 위한 로비스트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선임 절차에서의 소액주주 영향력 강화, 이사회 외부 주주대표들로 구성된 추천위원회 등의 방안이 나오고 있다.
나 비서관은 "사외이사 제도 자체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보완장치 마련에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