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카드사에서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이 모씨는 '공문과의 싸움'에 진이 빠진다. 사내 PC특성상 회사 메일로만 파일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에 첨부파일을 보낼 때에는 무조건 결재를 받아야 하고 내부 PC로 작업하는 문서는 모두 저장과 동시에 잠금장치가 걸려 외부 PC에서 열리지 않는 구조다. 이 보안을 풀기 위해서는 공문을 작성해 결재를 받아야 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내부에 제출하는 공문을 작성한다. 김 씨는 "최근 고객정보 유출사고로 이런 불편은 감내해야 한다"며 "간혹 독촉을 받는 등 업무가 지연될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당연한 절차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악의 카드사 정보유출 사태로 은행과 카드사 등이 '철통보안'에 목매고 있다. 사내에서 휴대용 저장장치(USB)를 쓰지 못하는 것은 기본이고 업무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려면 임원의 결재를 받도록 돼있다.
문서도 저장하자마자 암호화돼 지정된 사용자 외에는 문서를 열어볼 수 없게 돼 있다. 여기에 각종 보안프로그램이 깔려 있다보니 업무용 PC가 느려지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스마트폰 등으로 갈수록 편리해지는 시대이지만 금융권에 종사하는 직원들에게는 '언감생심'이다.
금융권의 전문성과는 다소 떨어지는 방법이라도 보안을 위해서는 '손품'을 팔아야 한다. C카드사의 경우 외부업체 직원이 해당사의 데이터를 이용해 작업을 할 경우 가상 데이터로 작업을 하는 방식을 쓴 덕에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고객들의 실제 정보가 들어있는 데이터를 직접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해당 금융지주사의 부사장은 "주민등록번호를 예로 들면 뒷자리의 숫자를 아예 다르게 배열한 조작된 문서를 외부업체에 넘긴다"며 "일일이 바꿔야 하는 작업이다보니 시간 할애비용도 상당해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때문에 일부에서는 생산성이 더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기준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그룹의 순이익을 직원 수로 나눈 1인당 순익은 3년 새 5705만원에서 4553만원으로 줄었다. 직원 1명이 1년에 벌어들인 돈이 1152만원 감소한 셈이다.
모두가 '죄인'이 된 상황이다 보니 함부로 불평을 얘기할 수는 없다. 고객정보유출 사태로 전체 신용카드사들의 이미지는 동반 하락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리얼미터가 지난달 실시한 11개 카드사에 대한 브랜드 지수(BMSI) 조사 결과를 보면 신한카드의 BMSI는 사태가 일어나기 전 52.3에서 50.5로 1.8 포인트, 삼성카드는 41.7에서 39.6으로 2.1 포인트 떨어졌다.우리카드도 정보유출 이후 BMSI가 0.4 포인트 감소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융사 임직원들은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보안에 온 신경을 쓰고 있지만 '혹시나'하는 마음에 불면증에 시달린다.
D은행의 카드 담당 부행장은 "정보유출 사고 이후 사고를 일으킨 금융사가 아니더라도 카드 담당 임원이 금융감독원에 불려가는 일이 잦아졌다"며 "금융사고를 비껴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요즘 숙면을 취한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