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로 표면화되고 있는 동북아에서의 미·중간 패권 경쟁도 한국 외교에 새로운 도전으로 떠오르고 있다.
무엇보다 힘에 기반을 둔 중국의 외교와 미국 외교가 마찰을 일으키는 형국이다.
중국의 잇단 군사력 과시에 미국의 경계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은 지난해 9월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호'를 공식 취역시켰다.
랴오닝호의 전투능력에 대해선 부정적 시각도 많지만, 중국의 해군력이 항모를 보유할 정도로 확대됐다는 점은 미국과 동아시아 우방국들에게 큰 압박이 될 수 있다.
지난달 5일 남중국해에서 미 군함과 중국 군함이 서로 충돌 직전까지 가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발생했던 게 그 대표적인 예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동북아 정세에서 앞으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중국의 행동"이라며 "국제규범을 무시한 중국의 대국주의적이고 일방적인 행동이 정세 불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G2간 갈등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양국의 이해득실 셈법도 빨라지고 있다.
중국의 이번 CADIZ 선포에 대해 장기적으로 중국의 태평양 진출 의지를 공고히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반면, 일각에선 이번 CADIZ 선포로 오히려 미국의 '아시아 회귀전략'에 명분과 기회를 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이 CADIZ와 관련해 직접 대응하기보다는 일단은 무마하는 식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내년에 이란 핵협상이 본궤도에 오른 이후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며 "CADIZ는 미·중 패권 경쟁의 전초전으로, 앞으로 갈등 수위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CADIZ 문제를 수면 위로 불거지게 한 뒤 다음 단계로 주변국들이 자국의 의도를 암묵적으로 동의하도록 회유하거나 위협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호주 국방아카데미(ADFA)의 아시아 해양전략 전문가 칼라일 테이어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것은 영토분쟁과 관련한 양국간의 교착상태를 깨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산한 행동"이라며 "중국의 움직임은 철저하게 조정된 것이다. 외부에는 방어적으로 보이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이런 미·중간 패권 경쟁에 잘못 대응할 경우 중국의 팽창과 미국의 봉쇄 구도 속에 한국이 중간에 끼일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인 김한권 연구위원은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쓴 '중국 이야기(On China)'를 인용하며 "미국이 체스에 비유해 적이라고 여기는 이라크 혹은 소련을 무너트리는 등 상대의 왕을 잡는 반면, 중국의 전략은 각 지역에서 여러 형태로 이기거나 지지만 전체적으로 자신이 이겨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이기기만 하면 되는 바둑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특성은 정치문화로 이어져 정면승부를 선호하는 서양 정치와 달리 중국 정치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or-nothing)' 식의 모험을 피하고 모호함, 간접성, 인내를 통한 장점 축적 등을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서로 다른 전략과 사고로 파워를 키워가는 미·중에 하나의 전략과 시각으로 대응할 경우 우리 외교가 위험천만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