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불량 볼트를 쓴다는 사실을 사업장 내에서 아는 사람이 있었지만, 이들은 왜 불량볼트의 사용을 암묵적으로 묵인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볼트’는 건축물이나 기계를 만들 때 구성품을 이어주고 고정하게 쓰이는 접합재료로 제조업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기계요소다. 제품의 규격과 모양 인장(물체가 잡아당기는 힘에 저항해 원형을 지키려는 힘)강도에 따라 제품의 종류가 수천~수만가지나 된다. 따라서 건설·제조업체들이 품질을 검사하고, 설계 규격에 맞춘 적합한 제품을 사용했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할 것이 바로 볼트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올 1월 27일 발생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불산 누출 사고의 1차 원인은 중앙화학물질공급시스템(CCSS) 내 불산탱크 밸브의 이음쇠 부분(고무패킹)이 노후되고 볼트가 부식돼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배관을 이어 주는 부품인 플랜지 연결 볼트가 불완전하게 조여지고 개스킷 삽입 작업 불량으로 1차 보수작업 당시 교체한 밸브에서 불산이 2차 누출된 것으로 분석했다. 내년이면 20주년을 맞는 성수대교 붕괴사건의 원인 중 하나도 볼트 불량이었다.
2011년 포르쉐와 크라이슬러, 볼보 트력 등이 고정볼트의 결함으로 국내외에서 리콜을 받은 것을 비롯해, 해군의 최신예 214급(1800t) 잠수함 3척 전부가 볼트 조임성능의 부실 및 규격 미달 볼트의 사용으로 선체 결함으로 2010 기간 동안 운항 정지된 적이 있었다.
이처럼 우습게 보이는 볼트 하나가 대형사고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은 현장 작업자들이라면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 따라서 끊임없이 예방 교육이 진행되지만 사고는 멈추질 않는다.
이에, 사고 원인을 찾아내는 데 있어 단순히 한명의 개인, 한 기업의 책임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전체를 놓고 왜 그런 일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일 삼성 수요 사장단 회의에서 ‘안전, 리더의 역할’로 강연한 김동수 삼성석유화학 고문도 듀폰 재직 시절 경험을 소개하며, “듀폰은 규격외 볼트를 사용하게 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물리적 원인을 찾는데 그치지 않고 해당 볼트를 사용한 사람의 문제인지, 회사 시스템의 문제인지를 밝혀냈다. 시스템이 잘못된 것이라면 공장을 다시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제조업체 현장 기능직 종사자는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가장 큰 문제는 부품 공급사들이 대기업으로부터 받는 납품단가가 낮아 수익을 맞추려면 설계상 규격과 안맞지만 티가 안나는 정도의 제품을 납품하고 싶다는 유혹을 받는다”며 “현장 관리자들도 볼트 하나가 공급이 안돼 작업 전체가 중단되는 일이 발생할 경우 큰 질책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압박감에 눈을 감아주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결과를 위해 과정의 잘못을 외면하거나 무관심으로 돌려버리는 심리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몰고 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