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이 CP 불완전판매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금융당국과 금융사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며 대응책 마련에 나섰지만, 늑장대처란 비난을 피하긴 어렵게 됐다.
3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양증권이 판매한 동양레저 및 동양인터내셔널 CP는 약 4586억원(전자단기사채 포함)으로, 투자자는 1만3063명에 이른다. 또 지주회사 ㈜동양이 발행한 회사채 규모도 8725억원이며, 투자자만 2만816명에 달한다.
◆사후약방문 식의 금융소비자 보호
비록 금융당국이 동양사태에 따른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금융소비자보호 강화"가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를 피하긴 어렵다. 비슷한 사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데도 불구하고, 예방이 아닌 '사후약방문' 식의 금융소비자보호란 지적도 있다.
이번 동양증권 CP사태는 5조원 이상의 피해를 초래한 저축은행의 후순위채 파동과도 유사하다. 즉, CP나 회사채 불완전판매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란 점에서, 금융당국의 책임은 더욱 크다.
더욱이 양도성예금증서 금리담합 의혹에 대한 국민검사청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금융소비자보호에 대한 금융당국의 의지와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국민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 관계자는 "동양그룹의 단기사채가 급증하는 상항에서 단기사채가 개인들에게 지속적으로 판매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치한 것은 금융당국의 심각한 직무유기행위"라며 "제2의 저축은행 사태로 피해가 확산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설픈 법 적용…피해는 소비자에게
금융당국의 어설픈 법 적용도 문제로 지적된다. 동양그룹은 2010년 주채무계열 대상 기준에 해당되지 않아 은행의 관리대상에서 제외됐다. 현재 금융기관의 신용공여 잔액이 금융기관 전체 신용공여 잔액 대비 0.1% 이상인 계열기업군(소속기업체 포함)은 주채무계열로 선정돼 금융권의 관리를 받는다.
주채무계열 대상으로 선정되면 주채권 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는 등 금융권이 재무구조 개선을 유도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도 금융권을 통해 해당 계열 기업의 차입 상황을 관리 감독할 수 있다.
하지만 동양그룹은 이 기준에 해당하지 않아 금융권의 관리 대상에서 제외됐다. 금융당국은 최근에야 주채무계열 제도를 정비해 채권단 관리 대기업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금융당국은 지난 4월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투자부적격 등급인 계열사 회사채나 CP 등의 투자 권유를 금지하는 금융투자법 규정을 개정해놓고도 6개월간 유예 기간을 뒀다. 그 사이 동양그룹의 부실 계열사 CP는 동양증권을 통해 개인들에게 판매됐다.
◆투자자 보호 뒷전…CP 불완전판매
결국 금융소비자단체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금융소비자원은 동양증권 CP 피해 접수를 받고 있으며, 사흘간 무려 1000여명이 몰렸다. 이곳에 접수된 피해액은 총 500억원에 달한다. 금소원은 민형사상 조치를 취하는 것은 물론이고, 피해자 대책위원회도 구성하기로 했다.
특히 금소원에 접수된 피해사례를 통해 불완전판매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충격을 준다. 계좌에 돈이 있다는 이유로 CP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고령 주부에게 가입을 권유한 사례 등이다. 월세에서 전세로 옮기려고 모은 자금을 CP 매입에 투입한 경우도 있었다.
조남희 금소원 대표는 "이번 사태는 동양증권이 수만명에게 CP와 회사채를 팔아 부실 그룹 계열사의 자금을 조달해왔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금융지식이 부족한 주부나 자산 고객들에게 투자 위험을 알리지 않고 '안전하다'는 말로 부실기업에 고객들의 투자를 유도하거나 만기를 연장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기간 법의 허점을 이용해 동양그룹의 편법적인 자금 조달을 지시한 그룹의 최고경영자와 사외이사 등에 대해선 책임 있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며 "비도덕적 판매 및 기획을 한 직원에 대해서는 민형사상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