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재호·윤태구·박재홍 기자= 중국 톈진의 삼성전자 휴대폰 생산공장.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학생 200여명이 생산라인에서 휴대폰 조립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들은 산둥성에 위치한 기술전문대 지난정보공정학교 학생들로 실습생 신분이지만 숙련도는 기존 직원들에 뒤지지 않는다. 이는 재학 중 삼성전자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마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들을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는 한편 지난정보공정학교와 협약을 맺고 오는 9월 시작되는 새 학기부터 '삼성반'을 운영키로 했다. 삼성전자가 요구하는 기술을 익히고 졸업 후 삼성전자에 취업해 바로 생산라인에 투입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처럼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활약하고 있는 국내 대기업들이 현지 기술전문대 및 대학과 연계해 맞춤형 인력을 키우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에서 성과를 거둔 산학협력 모델을 해외 법인에서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재교육 과정 없이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우수 인력을 양성해 생산 및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현지 취업난 해소에도 도움이 돼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 현지 인력 직접 키워 쓴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해외시장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들이 현지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정보공정학교 외에도 다수의 학교에서 '삼성반'을 운영하고 있다. 휴대폰과 가전, PC 등 생산품목에 따라 차별화된 기술이 요구되는 만큼 삼성전자 직원이 직접 해당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차는 지난 6월 중국 시안기전정보기사학원과 '베이징현대반' 신설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인원은 50명 수준으로 졸업 후 현대차에 취업해 차량 조립라인에서 일하게 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생산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집중 교육하고 교재와 학비 등도 지원하게 된다"며 "이에 앞서 2000년대 중반부터 베이징에서도 3~4개 학교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법인이 있는 장쑤성 우시에서 다양한 산학협력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우시직업기술학원 등 3개 전문대에서 'SK하이닉스반'을 운영 중이며, 난징대학과 중국과학기술대학 등 유명 대학과 공동으로 산학발전기금을 활용한 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 조선사들도 공급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엔지니어링 인력 확보를 위해 해외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미국 휴스턴에 엔지니어링 합작사를 설립하고 관련 인력을 직접 양성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도 휴스턴에 엔지니어링 인력 양성을 위한 전문 계열사를 세웠다.
또 인도네시아에도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엔지니어링 인력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인도네시아 엔지니어링 센터를 통해 설계 인력을 양성하고 이들을 활용해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해양 플랜트 시장을 공략할 방침이다.
◆ 맞춤형 인재가 기업 경쟁력 초석
국내에서는 산학협력이 보편화돼 있다. 실제로 주요 기업들은 산학협력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적기에 충분히 공급받고 있다.
삼성전자 등은 정부와 국내 마이스터고의 우수 학생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해 시행 중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100명가량이 처음 입사해 현직에 배치됐다.
LG전자와 SK하이닉스, 삼성전기 등도 국내 유명 대학과 손잡고 석사과정을 공동 운영하며 필요한 인력을 수혈받고 있다.
기업이 실전형 인재를 직접 키워 활용하는 노하우가 충분히 축적돼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 산학협력 프로그램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이 양성한 실전형 인재는 입사 후 재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또 교육과정 중 해당 기업의 문화와 비전 등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현지 정부 및 학계도 국내 기업들의 산학협력 프로그램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취업난 해소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선진기술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창조경제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라며 "글로벌 시장을 이끌고 있는 국내 대기업들이 인재 개발의 범위를 세계로 확대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업들의 글로벌 인재 개발 및 육성 노력을 통해 더 많은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