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최대’ 대한상공회의소는 어떤 단체?

2013-07-2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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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채명석·박재홍 기자= 대한상공회의소는 경제4단체 가운데 하나이자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민간경제단체다.

통상 경제4단체의 수장으로 재계의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지칭하지만 회원사의 규모와 역할, 국제적 위상을 놓고 볼 때에는 단연 대한상의가 압도적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

대한상의는 전국 지방상공회의소의 운영 및 사업을 종합·조정하고 그 의견을 대표하며, 국내외 경제단체와 상호협조해 상공회의소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 한국의 상공업 진흥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대한상의의 주요 기능은 상공업에 관한 대정부 건의권 및 정부자문에 대한 답신권이 법에 의하여 규정돼 있다. 그 밖에 법정사업으로서 상공업자의 실태대장의 작성·비치 등을 비롯해 △ 상공업에 관한 통계조사와 연구 △상공업에 관한 계획·조정과 권장 △정보자료의 수집·간행 △상공업에 관한 지도·선전과 중개·알선 △상공업에 관한 제반 증명의 발급·검사·감정 △상공업에 관한 기술·기능의 보급과 검정 △대△중소기업간 협조와 조정 △국내외 상사분쟁의 조정과 중재 △상공업계 또는 사회 일반의 복리증진 △상공업의 박람회·견본전시회 등의 개최·주선 △상공장려관의 설치·운영 △경제윤리의 확립과 상도의 함양 △국제통상의 진흥과 국제경제협력 등 광범위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대한상의의 뿌리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7년 개항 이후 개항지를 중심으로 국내에 외국상품과 서구식 상업방식이 도입됐고, 이와 함께 주로 일본인 상인들에 의해 상공회의소제도가 도입되자 이에 대항하는 민족계 상인조직으로서 원산상의소(1882년)·한성상업회의소(1884년) 등이 속속 설립됐다.

1895년 ‘상무회의소규례’가 제정돼 상의 조직에 최초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는 갑오경장에 따라 육의전 등 특권 상인층이 해체되고 근대적 회사가 출현하는 등, 근대적 상공업 발전의 시대적 기운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보수적인 친러파 내각의 등장으로 1897년 ‘상무소규례’는 보부상단 중심의 ‘상무사장정’으로 대체됐고 한성상무회의소는 폐지되었다. 상의 조직이 민족계 상인들의 힘으로 재건돼 다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침탈을 본격화해 고문정치를 펴고 화폐개혁을 단행한 여파로 국내 상인들이 일대 금융공황을 겪게 되면서부터였다.

조선인 상권의 중심이었던 당시 한성의 운종가 상인들은 심각한 자금난과 위기를 타개하기 위헤 1905년 7월 30인으로 발기인총회를 열어 경성상업회의소를 창립했다.

이를 전후해 각 지방에서도 도청소재지와 개항장을 중심으로 해당 지방 일본인 상공업자단체에 대항하여 상업회의소·상의소·민의소·객주회 등의 이름으로 17개 소에 상공회의소 조직을 설립 또는 재건됐다.

이들 민족계 상공회의소 조직은 1915년 ‘조선상업회의소령’이 제정돼 경성상업회의소 등 주요 조선인 상공회의소 조직이 일본인 상공회의소에 강제 통합될 때까지 그 활동을 계속했다.

그 뒤 총독정치는 다시 1930년 ‘조선상업회의소령’을 ‘조선상공회의소령’으로 개정해 기존조직을 일본인 우위로 개편하고 감독권을 강화하였고, 민족계 상공인 조직을 말살했고, 1944년 상공회의소를 조선상공경제회로 개편, 전시동원체제에 편입했다.

8·15 광복 후 미군정하에서 조선 상공인들은 구 상공회의소 조직을 중심으로 1946년 임의단체로서 조선상공회의소(1948년 대한상공회의소로 개칭)와 22개 지방상공회의소를 재건했으며, 광복 후와 6·25전쟁의 혼란 속에서 극심한 운영난에 허덕이면서도 당시 유일한 민간경제단체로서 명맥을 유지하면서 구심점의 구실을 했다.

운영난을 타개하고 그 존립기반을 확립하기 위해 상공업계 지도자들은 1949년부터 상공회의소제도의 법제화를 추진했으며, 1952년 12월 ‘상공회의소법’의 국회를 통과해 공포됐고, 1953년 10월 서울 등 24개 지방상공회의소가 새로운 법에 의거해 설립인가 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상공회의소제도의 확립을 보게 됐다. 초대 대한상의 회장은 후일 재무부장관이 된 이중재시였다.

1950년 말엽 전쟁 복구가 궤도에 오르면서 상공회의소 활동은 밀수방지·국산품애용·물가안정 등의 건의와 운동을 전개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급속한 경제성장기, 1980년 무역흑자 시대, 1990년 IMF 외환위기, 2000~2010년 한국 경제의 재도약 시기를 거치면서 대한상의도 꾸준히 성장했다.

2013년 현재 대한상의는 71개 전국 상의를 정회원으로, 94개 단체 및 협회로 구성된 특별회원으로 이뤄졌다. 또한 정 회원인 전국 71개 상의에는 13만5000여 회사 및 단체 회원이 가입돼 있다.
<자료: 네이버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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