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문화 융성? 골프도 문화다

2013-07-01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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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문화체육부장 겸 골프대기자

아주경제=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를 강조한다. 정부 예산에서 문화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2% 이상으로 높여 ‘문화 융성’ 시대를 열겠다고 한다.

이전 대통령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산뜻한 발상이다. 문화를 제쳐두고 국가나 기업·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얘기할 수 없다.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 지자체에서 벌이는 축제나 도시계획, 심지어 외교에서도 문화를 접목해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5000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가 나아길 길은 문화에서 찾아야 할 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한 화두다.

문화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의미있는 행동양식이나 물질적·정신적 성취를 말한다. 휴대폰 사용 행태도 문화요, 4대강 사업도 문화다. 최초로 여성대통령을 뽑은 것도 한국정치의 문화다.

한 시대에 문화가 융성했다는 평가를 들으려면 특정 부문을 억압해서는 안된다. 한쪽을 통제해 다른 한쪽의 번성을 꾀하는 식의 문화는 진정한 문화가 아니다. 중국 진나라 때의 분서나 청나라 때의 문자옥, 조선시대의 사문난적 사례에서 우리는 배타적인 문화가 가져온 재앙을 봤다. 또 골프 초창기인 15세기에 골프를 금지한 스코틀랜드는 오히려 골프의 발상지가 됐다.

문화를 중시하는 박 대통령이 골프를 백안시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안보위기 상황에서 군 장성들의 주말 골프가 발단이 됐다고는 하나, 21세기 한국에서 골프를 짓밟고 문화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안맞다. 월요일 아침의 대화 소재로 골프를 빼놓을 수 없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대통령이 직접 “공직자들의 골프를 금한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장성들의 골프 후 ‘엄중 경고’한 것만으로 공직자들은 골프에 관한한 복지부동으로 돌아갔다.

골프가 그렇게 만만한가. 위기가 닥치면 공직자들의 골프를 막거나 골프를 사치성 운동으로 매도하면 국민들이 박수를 치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골프인구는 300만명을 넘었고, 한햇동안 골프장을 찾는 골퍼들은 프로야구 관중의 4∼5배나 된다. 골프장은 500개에 육박하고 소도시에도 스크린골프장이 들어설 정도다.

냉전·독재·쿠데타·데모 등을 제외하고 우리가 내세울 것이 없던 때 미국·일본 등지에서 ‘코리아’ 브랜드 이미지를 높인 사람이 누구인가. 박세리 김미현 최경주 양용은 등 골퍼 아니었던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로 어려웠던 시절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스포츠도 골프였다. ‘한류’의 원조는 ‘골프 코리아’였는지도 모른다. 지금 한국여자골프는 세계 최강이다. 우리선수들은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대회마다 우승경쟁을 하며 코리아 브랜드를 알리고 있다. 골프는 112년만에 올림픽 정식종목이 됐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한국은 메달후보다.

그뿐인가. 프레지던츠컵(미국-인터내셔널 남자프로골프단체전)이 2년 후 한국에서 열린다. 박 대통령은 그 때 축사나 시상식을 해야 할 판이다.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대통령은 공직자들의 골프를 금하면서도 문화 융성을 외쳤다’고 쑥덕거리면 뭐라고 할 것인가. 김영삼 전대통령이 외국정상을 만나 골프 금지와 중과세를 자랑했다가 “한국에서는 운동하는데도 많은 세금을 냅니까?”라고 묻는 바람에 입을 다물고 만 해프닝과 다를 것이 없다.

골프를 못하게 하면 공직자들이 예술의 전당으로 갈 것으로 보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이미 대중화된 골프를 억누른 채 문화를 꽃피우겠다는 발상은 어불성설이다. 문화의 거름인 다양성을 부인하고 어떻게 융성을 꾀하겠다는 말인가. 골프도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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