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오른쪽)이 1998년 6월 16일 1차 소떼 방북을 위해 자신이 키운 소 고삐를 잡고 환송인파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어릴 적 가난이 싫어 소 판 돈을 갖고 무작정 상경한 적이 있다. 그 후 나는 묵묵히 일 잘하고 참을성 있는 소를 성실과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삼고 인생을 걸어 왔다. 이제 그 한 마리가 천 마리의 소가 되어 그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간다.”
지난 1998년 6월 16일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2001년 별세)은 충남 서산농장에서 키운 소 499마리를 끌고 판문점을 넘기 전에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과 대한 죄송함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늘 가슴 한켠에 아픔을 담아야 했던 그는 남북이 분단된 지 반세기 만에 민간기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판문점을 통해 방북을 실현했다. 이어 그해 10월 27일 501마리의 소를 이끌고 다시 북한을 찾아감으로써 약속한 소 1000마리를 기증했다.
정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은 외환위기 직후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대치상태를 지속했던 남북 관계를 민간 차원의 경제협력으로 풀어내는 기폭제가 됐다. 1차 방북에서 금강산 관광개발 사업 추진 등에 합의한 뒤 2차 방북 직후 금강산 관광이 시작돼 1998년 11월 18일 ‘금강호’가 첫 출항을 했다. 2000년 6월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됐으며 같은 해 8월 남북은 개성공단 건립에 합의했다. 현재 남북경협의 양대 기둥이 ‘소떼’ 덕분에 실현된 것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오른쪽)이 1998년 6월 16일 1차 소떼 방북 당시 자신이 키운 소 고삐를 잡고 환송인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15년이 올해 6월 16일. 당시의 희망과 기대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는 상태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지 5년째, 북한측의 강제 폐쇄조치로 정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갔던 판문점 육상통로를 통해 짐을 싸고 내려온 개성공단 입주기업 직원들은 두 달여가 넘도록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발을 구르고 있다.
지난 12일 남북 당국회담이 6년 만에 재개된다는 소식에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으나 허무하게 무산됐고, 16일 이날 북한은 한국 대신 미국에 고위급 회담을 제의했다.
현재로서는 15년 전보다 더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 남북 경협 참여기업들에게는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나 정 명예회장과 같은 기업인과 ‘소’에 비견되는 남북 화합의 상징이 없다는 점이 민간 경제협력의 돌파구를 찾는데 어려움을 키우고 있다는 반응이다.
재계 관계자는 “어렵지만 이럴 때일수록 소떼 방문과 같은 화합의 제스처를 실천함으로써 남북간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도 고려해 준다면 꺼져가는 남북 경협의 불씨를 다시금 살려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