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중간고사를 대비해서 무조건 외우란다.
전류가 뭔지 자기장이 뭔지도 모르는데 세 손가락에 싸인펜으로 써놓고 시키는 대로 외웠다. 물론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손을 씻고 바로 까먹었다.
그러고 한참 뒤 실습시간이 있었다. 바로 이거였구나. 복잡한 회로를 놓고 이뤄진 실험인대도 그 날의 장면은 아직도 눈앞에 보이듯 선하다.
아마도 지금 만큼의 나이를 더 먹게 되도 머릿속에 저장된 그 장면을 떠올리며 누군가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현재 국가보훈처 의정부보훈지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 중 현충시설을 관리하는 것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현충시설은 독립운동 또는 국가수호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이를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국가보훈처에서 지정하고 각 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시설을 말한다.
이를 관리하기 위해서 노후된 시설의 개보수를 진행하기도 하고 탐방활동 등 현충시설을 활성화하기 위한 사업도 하고 있다. 그런데 아쉬움이 참 많다. 현충시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져봤지만 그냥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전쟁기념시설 정도로만 알고 있다.
그들의 머릿속에 현충시설의 색깔은 어둡기만 하다. 그래서 더욱 관심이 없다. 그들의 무관심을 탓할 수가 없다. 어른들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현충시설이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 두 가지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각 지역마다 현충시설이 너무 산재해 있다. 가끔 몇 개의 시설이 공원에 모여 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여기에 왜 이런 게 서있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생뚱맞게 홀로 서있다.
일부러 그 시설을 찾아가려 하지 않는 이유이다. 무언가 볼 게 있어야 보고 싶어질 것 아닌가. 외국의 경우에도 많은 전승기념비 또는 추모비가 건립되어 있는데 이들은 주로 공원화하여 한 곳에 모아놓았거나 유명한 관광지에 위치하여 있다.
주변의 많은 볼거리가 자연스럽게 유인을 제공한다. 그래서 그 곳은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으며 연설장소, 각종 행사장소로 시민들에게 항상 열려있다.
이제 우리도 현충시설은 엄숙하기만 한 시설이라는 편견을 버리게끔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장소’로 활용해야 한다. 덩그러니 놓여 있느니 그 앞에 우물이라도 파서 목마른 사람들이라도 찾게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시군마다 수십 개씩 지정된 현충시설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시군별로 한 곳에 모아 현충공원화를 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많은 예산과 시간 그리고 자치단체의 협조가 필요한 문제이겠지만 나라사랑 현장교육의 장으로서 그리고 새로운 관광코스로서 여러모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현충시설을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 시설을 만들어놓고 국민들이 많이 보러오기만 바라고 있어봐야 아무도 오질 않는다. 국가보훈처에서는 현충시설을 코스로 만들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탐방활동을 지속적으로 실시해오고 있지만 대부분 나들이 정도의 일회성 행사로 끝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주말을 활용해 봉사활동 경력을 채우기 위해서 참여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현충시설을 탐방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을 정규교육 프로그램화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교육당국과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학생들이 현충시설을 통해 국난의 시기에 몸 바친 희생에 감사의 마음을 갖고 다시는 이런 일이 우리에게 발생하면 안 되겠다는 경각심을 갖도록 그야말로 살아있는 안보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지난날의 역사를 둘러보며 갖는 현장교육이 강의실에서 말로 하는 교육보다 더 효과가 크지 않을까. 플레밍의 왼손법칙을 무턱대고 외울 때보다 실험과 실습을 통해 제대로 익힐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6월은 국민들이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호국보훈의 달이다.
호국보훈을 떠올리고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은 그 자체의 의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새 정부의 기조인 국민대통합을 호국보훈이라는 한 마음을 갖는 것에서 그 시작점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국가보훈처에서 그리고 각종 단체에서 준비 중인 여러 행사는 행사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 가지 더 바라는 것은 국민들의 나라사랑교육이 절실해진 이 시점에 기왕에 지어진 현충시설을 잘 활용하여 그 효과를 배가시켰으면 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무관심을 탓하지 말고 관심을 끌도록 만들어보자.
아주경제 최종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