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1일 무역금융 부족해소를 위해 11조1000억원의 특별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해 하반기 시작된 엔저 현상으로 일부 품목 수출 둔화, 채산성 악화 등 우리 수출에 부정적 영향이 가시화 됐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에서는 이번 엔저 지원 방안이 실효성보다는 현재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단기적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번 방안에서도 엔저 대응에 소요되는 지원은 전체의 10%도 안되는 1조3000억원에 불과하다.
환변동보험 1조3000억원 확대로 대응을 강화했다는 정부의 발표가 수출 중소·중견기업의 채산성과 수출경쟁력 악화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 될수 있을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1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수출 등에서 엔저 영향이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지만 최근 일본 기업 가격경쟁력 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을 제기했다.
특히 세계경제 회복이 지연되고 엔저 현상이 상당기간 지속되면 수출과 성장 위축, 산업경쟁력 저하, 중소기업 피해 등이 우려된다는 뜻을 내비쳤다.
실제로 지난달 주요 국가별 무역수지(4월 1∼20일) 추이를 보면 미국(9억3000만 달러), 중국(29억3000만 달러)과는 흑자를 유지했지만 일본은 19억3000만 달러 적자가 났다.
한달전 기재부가 우려했던 엔저로 인한 수출 기업 피해가 4월 수출동향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세계경제의 완만한 회복에도 불구하고 엔저 영향 등으로 우리 수출이 아직 정체 상태에 있다”며 “수출이 순항하기 위해 범부처 차원의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환율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원칙에 따라 강력한 대응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정책포럼에서 정부의 외환시장 직접개입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지난 3월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과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경제전문가와 업계에서는 현 부총리가 환율을 단순한 경제논리로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환율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하면서 각 부처의 엔저 대응도 소극적으로 일관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환율에 대해 지나치게 한국은행으로 떠넘기는 모양새가 시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모습인 셈이다. 과거 전례를 볼 때 엔저에 대한 중장기 전략 없이는 과거와 같이 성장세 둔화를 겪어야 한다는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1988~1990년 엔화의 버블붕괴 당시에도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축소 등으로 엔화가 약세로 전환되면서 원화는 3저 호황(저유가, 저달러,저금리) 등으로 강세로 전환됐다.
이에 따라 환율이 수출에 부정적인 가운데 세계경제 성장세가 1988년 4.5%에서 1990년 3.2%로 둔화되면서 우리 성장과 수출, 경상수지가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기재부에서는 현재 상황이 당시와 같은 엔화약세·원화강세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수출과 성장세가 둔화되는 패턴이 유사하다는 분석이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과거 엔화 약세와 원화 강세가 함께 진행된 시기는 1988년~1990년, 2004년~2007년 두 차례 발생했다”며 “1988년 당시 엔화는 버블붕괴로 이어지며 우리 성장과 수출, 경상수지가 악화되는 직접적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엔저에 대한 포괄적 중장기 전략을 세우지 못하면 과거 사례와 같은 경기 악화를 재현할 수 있다”며 “적극적인 대응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일정부분 환율에 개입할 필요성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