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산은금융지주의 민영화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의 통합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공사의 기능이 산은 등과 중복돼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지적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통합에 드는 비용과 인력조정 등 만만치 않은 문제가 뒤따르므로 역할 조정을 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전날 국회 업무보고에서 산은지주와 공사의 통합 가능성을 열어뒀다. 정책금융기관 재편을 놓고 검토 중인 다양한 방안 중 하나라고 답한 것이다.
정책금융공사는 지난 2009년 10월 산은이 민영화하는 것을 전제로 출범했다. 하지만 설립된 지 2년여 만인 2011년,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정책금융기관 통·폐합을 언급하면서부터 공사는 꾸준히 산은과 통합 논란을 빚어왔다.
정책금융공사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 등 여타 정책금융기관과 업무가 중복돼 정책금융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달 금융위에 산은과 공사 업무의 중복을 조정하라고 통보했다. 지난해 감사를 통해 조사한 결과 공사에서 행하는 대기업 여신과 해외 자원개발, 선박·항공기 금융 등의 업무가 산은과 겹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창립 4주년에 접어드는 지금 조직의 존폐가 언급되는 상황을 두고 공사는 불편한 기색이다. 이미 합치기에는 조직이 커진 데다 이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산은에 공사가 통합될 경우 민영화 과정에서 투입된 자금을 매몰비용으로 처리하고 다시 원상복구를 위한 비용을 들여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통합에 따라 발생하는 고용불안과 노조의 반발도 예상된다. 민영화를 백지화한 데 따라 해외 시장에서 국가신인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민영화에 박차를 가하고자 규모를 늘린 소매금융과 고졸 직원들도 골칫거리가 된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중소기업 지원 등 정책금융의 필요성은 커진 상태다. 불황이라는 경기여건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정책금융은 시장보다 정부의 자금배분 기능을 하기 때문에 확대될 경우 시장의 기능을 축소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 같은 이유들 때문에 통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목소리도 높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산은 민영화는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발전을 선도할 수 있는 대형 투자은행(IB)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며 지금도 여전히 IB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산은을 제외하면 국내에서 IB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은 사실상 없다.
윤 교수는 "무조건 (정책금융기관의) 덩치를 키우려는 생각보다 산은은 당초 방향대로 가고 공사의 정책금융 역할을 좀 더 키워 효과를 높여야 한다"며 "업무 중복을 피한다는 측면에서도 그 방향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기관의 연구원은 "정책금융공사는 산은의 정책금융 기능을 승계하면서 중소기업 지원과 금융안정 기능 강화까지 맡아 업무 규모가 상당히 커진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공사를 지주회사로 만들어 산은지주와 통합하고 나머지 업무들을 자회사로 두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적은 비용으로 조직을 개편하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는 조만간 정책금융기관 재편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이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