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1987년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 살 때였다. 평소 시인은 집 근처 술집에서 자주 술을 먹곤 했다. 어느 날 술집 주인 딸이 할 말이 있다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가게 안에 있던 술손님이 집으로 돌아가자 슬그머니 남자친구로 보이는 젊은이가 가게로 들어왔다. 두 사람이 시인 앞에 앉아서 고민을 털어놨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싶지만 당시 남자가 지명 수배자로 쫓기는 처지여서 사람들 앞에서 결혼을 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시인은 결혼하라고 독려하면서 축시를 써주고, 주례까지 맡아 젊은 예비부부를 결혼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 시인은 가슴 저린 이 사연을 시로 썼다.
'낡은 교회 담벼락에 쓰여진 자잘한 낙서에서 너희 사랑은 싹텄다/흙바람 맵찬 골목과 불기없는 자취방을 오가며 너희사랑은 자랐다/가난이 싫다고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반병의 소주와 한마리 노가리를 놓고 망설이고 헤어지기 여러번이었지만…'
신경림의 '너희 사랑'이라는 시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 시는 '가난한 사랑노래' 시의 원조다.
2011년 절판됐던 신경림 시인의 시집 ‘가난한 사랑노래’가 출간 25주년에 맞춰 특별판으로 다시 나왔다.
1988년 실천문학사의 실천시선 50번째로 선보인‘가난한 사랑노래’는 표제작이 교과서에 실리면서 널리 알려져 사랑받았다.
이 시집으로 인해 신 시인은 기존의 농민 시인에서 도시 빈민층의 고달픈 삶에 주목하며 민중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특별판 표지는 남궁산 판화가가 만든 시인의 장서표가 장식했다.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