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유희석 기자= 유동성 위기에 빠진 대기업 계열사들이 자금난 해소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룹 계열사끼리 단기 사채를 발행해 긴급 자금을 수혈하거나 유상증자에도 발벗고 나서고 있다.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외부에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그룹 내 여력이 있는 계열사가 자금 사정이 열악한 계열사 지원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동양그룹의 계열사간 자금 거래가 돋보인다. 실질적으로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동양레저와 금융계열사인 동양파이낸셜대부, 동양증권 등이 이 같은 거래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동양레저는 지난달 23일 계열사인 동양파이낸셜대부로부터 45억원을 빌렸다. 만기가 이달 7일로 16일짜리 단기 차입 형태다.
동양레저는 이런 식으로 지난달 8일부터 23일까지 동양파이낸셜대부로부터 211억원을 차입했다. 또 당초 지난해 말 130억원에 동양네트웍스로 넘기기로 한 서울 종로구 가회동 빌딩 가격도 162억원으로 높여 32억원을 더 확보했다.
동양레저가 자금을 빌려준 경우도 있다. 지난달 3일 동양인터내셔널이 발행한 단기 어음 10억원어치는 동양레저가 인수했다. 동양그룹의 대부업체 티와이머니대부는 5일 동양네트웍스에 114억원을 출자한다.
동양레저를 둘러싸고 그룹 계열사 자금 이동이 활발한 것은 동양레저가 그룹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동양레저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현 회장 아들인 승담씨가 지분 50%를 보유한 회사로 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동양과 주요 수익창출원인 동양증권 지분을 각각 36.3%, 14.8% 갖고 있다. 현 회장으로부터 그룹 내 주요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중심축인 셈이다.
반면 동양레저는 재무구조가 매우 취약한 편이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보유 현금 및 예금은 6억원에 불과하다. 연간 120억원 이상의 영업자금 부족도 겪고 있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단기차입금 규모도 5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연간 이자비용만 460억원 이상이다.
동양증권은 그룹 내 자금조달 창구 역할을 하면서 재무상태가 나빠지고 있다. 동양증권의 영업수익은 지난 2011년 3월 기준 3조원 이상이었으나, 2012년 3월에는 2조원 초반대로 줄었다. 종합금융 영업 종료와 주식 거래대금 감소로 인한 수익성 악화도 종합적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9월에는 계열사 기업어음 4329억원 정도가 포함된 상품을 판매하면서 고객에게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아 금융당국의 제재도 받았다. 당시 동양증권은 고객들 돈으로 부실 계열사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동양증권은 동양레저에 자금을 공급하는 동양파이낸셜대부 지분 100%를 갖고 있다.
STX그룹도 계열사 간 자금 대여가 활발하다. STX건설은 지난달 31일 새롬성원산업에 168억6400만원을 빌려줬다. 올해 안에 80억원을 추가로 지원할 예정이다. 기존 대여금 88억6400만원의 만기일도 3년 정도 연장해줬다. STX건설은 강덕수 STX그룹 회장과 강 회장 딸인 정연씨가 지분 50%를 소유하고 있다.
또 STX에너지는 지난달 23일 STX전력 유상증자에 참여해 102억원을 출자했다. STX조선해양은 지난달 24일 230억원 규모의 만기 한 달짜리 기업어음을 발행해 STX중공업에 넘겼다. STX그룹은 조선과 건설 등 업계 상황이 어려운 계열사에 자금 수혈이 많았다.
이밖에 지난해 법정관리에 들어간 웅진그룹도 계열사 및 총수 일가 사이의 자금 거래가 활발했다. 또 한진그룹의 한진해운과 한진퍼시픽, 동부그룹 일부 계열사 사이에 자금 지원이나 담보 제공 등의 거래가 있었다.
◆ 자금시장 경색이 원인
그룹 계열사간 자금 거래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외부에서의 자금 조달이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의 직접금융 조달규모는 131조564억원으로 전년 대비 8.6% 줄었다. 이 가운데 기업공개 나 유상증자를 통한 조달은 2조3637억원으로 전년의 5분의1 이하로 감소했다. 회사채 발행도 지난해 128조6927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2011년 130조4919억원보다 1.4% 줄었다.
이에 금융당국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는 약 40조원 규모로 파악되지만, 경기 침체와 자금시장 위축으로 기업들의 차환능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당국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대기업들의 구조조정과 자금지원을 위해 다음달부터 '그룹 구조조정 대책반'을 가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채와 기업어음 등의 만기 도래 상황에 맞춰 지원방안을 구체화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