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 이사회 한 관계자는 29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경영악화로 한전이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전기요금의 현실화 말고는 작금의 위기상황에서 한전을 구할 방도가 없다”고 이같이 하소연했다.
그는 “오죽하면 정부가 두번씩이나 반려한 전기요금 인상안을 놓고 여전히 머리를 싸매고 있겠는가”라며 “‘이번만큼은 안된다’며 경영진이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서 조율이 쉽지 않은 형국”이라고 말했다.
일단락 되나 싶었던 정부-한전 간 전기요금 인상안 공방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지식경제부 전기위원회는 최근 두차례에 걸쳐 한전이 내놓은 전기요금 인상안을 반려했다. 지난해 7월과 12월 두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이 인상된데다 물가상승 압박이 커 지나치게 높은 인상률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정부와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자칫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춰질 수도 있고 여론 악화도 불보듯 뻔한 상황이지만 한전이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나서고 있는 건 한전의 적자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전기요금 현실화라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한전은 올해 상반기 4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냈다. 한전은 지난 상반기 영업실적(개별 기준)을 잠정 집계한 결과, 매출액이 23조8943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8% 늘었다. 매출증대에도 불구하고 영업손실은 53.6% 급증한 4조3532억원에 달했고, 당기순손실도 2조8960억원으로 48.3% 증가했다.
이에 따라 한전의 부채총계(6월말 현재)는 지난해 말보다 9.2% 증가한 54조9860억원을 기록했고, 부채비율도 113%에서 133%로 높아졌다. 누적적자도 8조원이 넘는다.
한전이 천문학적 적자를 낸 건 원가에 미달하는 전기요금 때문이다. 2011년 전기요금 원가회수율은 87%에 불과하다. 전기를 팔면 팔수록 적자가 누적되는 셈이다.
상반기 전기판매량이 2.5% 늘고 지난해 두 차례 요금 인상을 통해 판매단가가 11.4% 상승했지만, 원유 등 연료가격이 오르고 발전단가가 싼 원자력 발전기와 유연탄 발전기 고장으로 고(高)원가 발전량이 늘면서 전력 구입단가가 24.8%나 올라 손실이 커졌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한전 관계자는 “2011년 이자 보상비율이 마이너스 2.1배를 기록함에 따라 한전은 이자를 갚기 위해 추가로 빚을 내야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치권 등 일각에서는 한전이 제2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사태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최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지경위 의원들은 한전의 적자구조를 개선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통합당 노영민 의원은 “한전의 적자가 누적되면서 이명박 정부 들어 국제신용평가기관의 신용도가 3단계나 하락했다”면서 “한전이 제2의 LH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전 누적적자의 대부분은 산업용 전기 때문이고, 이 중에서 80%는 대기업용”이라면서 “결과적으로 정부가 대기업에 혜택을 주기 위해 (전기료)현실화를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새누리당 이강후 의원도 “한전의 적자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전기료 현실화 절실한데, 구체적인 방안이 무엇이냐”고 홍석우 장관을 몰아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