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양종곤·이규진 기자= 스페인 지방정부의 재정위기로 유럽발 위기가 다시 재점화되면서 코스피가 1800선 밑으로 떨어졌다. 스페인 국채 금리는 이미 사상 최고치 수준을 넘어섰고, 스페인 증시는 2년 만에 하루 최대폭인 5.8% 추락했다.
지난 주말 발렌시아에 이어 스페인 지방정부가 잇따라 중앙정부에 자금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충격이 고스란히 국내 증시에도 밀어닥쳤다. 증시 전문가들은 스페인 구제금융이 현실화될 경우 리먼사태에 버금가는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다. 코스피가 다시 1800선 밑으로 추락한 것도 이 같은 불안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발렌시아에 이어 스페인 지방정부가 잇따라 중앙정부에 자금을 요청하면서 금융시장이 혼란을 빚고 있다. 스페인 증시는 23일 2년 만에 하루 최대폭인 5.8%로 추락했다.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역내 최고치인 7.32%를 넘어섰다.
이 같은 스페인 신용의 추락은 지난 20일 스페인의 발렌시아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금융자금을 요청하면서다. 발렌시아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이는 스페인 정부가 자금난을 겪는 지방정부를 위해 180억 유로의 구제기금을 설립한 이후 처음이다. 게다가 이날 미국 독립 신용평가회사인 이건 존스는 스페인의 국가 신용등급을 'CC+'로 한 단계 낮췄다.
이에 따라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이날 장중 7.309%까지 치솟았다가 7.285%를 기록했다. 스페인의 2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5.76%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JP모건의 닉 가르트시데 자산매니저는 "스페인은 매우 중대한 상황에 몰려 있다"며 "7%가 넘는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이미 곪을대로 곪은 상태"라고 말했다.
스페인의 악재는 지난 주말 연이어 터졌다. 발렌시아에 이어 무리시아 지방정부도 지난 22일 중앙정부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야라만차, 발레아릭스, 카나리아제도, 안달루시아 등 6개 지자체에서 구제금융을 요청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스페인 정부는 23일 유럽중앙은행(ECB)에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재개할 것을 촉구했다. 스페인의 외무장관 호세 마누엘 가르시아 마르가는 "현 시점에서 유로화에 투자를 할 수 있는 역할은 ECB밖에 없다"고 밝혔다.
스페인은 2014년까지 경제가 침체될 것으로 내다봤다. 스페인 예산장관인 크리스토벌 몬토로는 "내년 국내총생산(GDP)이 올 초 예상했던 0.2% 증가가 아닌 0.5%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오는 2014년까지 1.4% 증가할 것이라던 전망도 1.2%로 하향조정했다.
스페인의 리스크는 이탈리아로 확산됐다. 지난 20일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6%대를 넘어섰으며 증시는 4.4% 하락했다. 반대로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로 몰리며 독일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사상 최저치인 1.15%로 하락했다.
◇남유럽 위기는 아직도 '진행형'
국내 증시에서는 스페인 국채 금리가 급등한 점이 향후 증시에 큰 짐이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곽병열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7%대 금리는 과거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위험 트리거 포인트"라며 "'뭔가 나오기 직전의 불안감'을 내포하고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스페인 국채 금리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배경은 스페인의 전면적 구제금융 우려감이 점차 커짐에 따라서다. 이상재 현대증권 연구원은 "스페인의 경기침체 심화가 불가피하다는 점, 스페인 지방정부인 발렌시아가 지방채 차환을 위해 중앙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20일 유로그룹 회의에서도 스페인 정부 보증문제가 지속되면서 스페인 정부 부채 확대 우려가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당초 시장이 예상한 방향대로 유럽 위기 진화 단계가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말 EU 정상회담 이후 시장에는 일정 부분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안도감이 있었다. 당시 유럽재정안정기금과 유로안정화기구 등이 유로존 은행 직접 지원, 구제기금의 위기국가 국채 직접 매입 허용, 스페인 지원 구제자금 변제 우선순위권을 없애는 등 구체적인 정책이 나옴에 따라 놀랄 만한 성과라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7월 들어 EU 정상회담 기대감은 빠르게 식었다. 이동수 한맥투자증권 연구원은 "스페인 정부가 유로존으로부터 받은 은행 구조조정 지원금 300억 유로로는 현재 위기 진정 가능성이 낮아졌다"며 "당초 1000억 유로의 지원자금 전체도 9월 중순 이후에나 가능하고 지원조건도 스페인 정부 보증을 통한 지원이 가능하게 되는 등 6월 말 정상회담 합의내용과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증시 방향성 '스페인에 달렸다'
이 같은 악재는 당분간 국내 증시의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곽병열 연구원은 "지난주 국내외 증시는 사실 스페인 국채 금리 상승을 외면하며 미국과 중국의 경기부양 기대감으로 상승 분위기를 이어갔다"며 "하지만 스페인 국채 금리로 사실상 구제금융을 프라이싱하기 시작한 만큼 이를 외면하기는 어렵고 주 초·중반 저점테스트 진행은 피하기 힘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3일 증시에서 외국인투자자들이 2000억원에 가까운 매물을 쏟아낸 것도 이 같은 분위기에 일단 '팔고 보자'는 심리가 작용한 탓으로 풀이된다.
만일 스페인이 시장의 우려대로 전면 구제금융으로 갈 경우 시장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다. 지난 2008년 리먼사태의 재현이라는 것이다.
이상재 연구원은 "스페인 정부가 전면적 구제금융을 신청하면 '루비콘 강'을 건넌 것으로 봐야 한다"며 "이탈리아의 구제금융 신청과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 등으로 지난 2008년 9월 리먼 부도 이후 미 상업은행이 도미노식 도산사태에 직면했던 현상이 재현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