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베이징 특파원 조용성 기자 = “중국의 예술품들이 세계 최고가를 갱신하고 있는 이면에는 중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를 미술시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1992년부터 중국 본토 미술계에서 화가로서 활동해온 김남오 화백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16년여의 중국생활을 통해 수많은 현지 예술가들, 교수들, 평론가들, 경매관계자들과 교류하고 있는 김 화백은 최근 중국의 미술시장이 세계 1위에 올라서고, 중국 작가들의 작품이 천문학적 금액에 거래되는 현상을 주목하고 이를 이용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치바이스(齊白石,1864∼1957)의 송백고립도 (松柏高立圖)는 지난해 4억2550만위안(한화 약 720억원)에 팔려나갔다. 쩡판즈(曾梵志), 장샤오강(張曉剛) 등의 글로벌 스타작가들도 속속 탄생하고 있다. 이는 경매시장 거래실적에도 반영되고 있다. 세계미술시장 조사회사인 프랑스의 아트프라이스의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에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최대 규모로 올라선 중국은 지난해에도 47억달러의 실적을 기록해 세계시장의 41%를 차지하면서 확고한 1위 자리를 누렸다. 미국은 27억달러(세계시장점유율 24%)로 2위,영국이 22억달러(19%)로 3위를 각각 차지했다.
김 화백은 “경매에서 미술품을 어마어마한 액수로 사가는 주체들을 보면 대부분 중국의 국영기업이거나 국영기업의 자본이 섞여 들어간 예술펀드들”이라며 “사실상 중국정부와 공산당이 나서서 자국 예술품의 가격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 중국 미술계의 정설”이라고 말했다. 시장에 현금유동성이 풍부하며 뚜렷한 매수주체가 있기에 중국의 예술품들은 환금성이 뛰어나고 투자매력이 높다. 때문에 서방의 콜렉터들도 중국의 작품들을 발굴해 구입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다. 중국의 예술품들의 가격이 올라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 같은 분위기를 타고 중국에는 이미 수많은 미술 기획사들이 문화창업유한공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망한 신진화가를 발굴해 그의 작품을 싼 가격에 대량으로 구입한 후, 자체자금과 네트워크로 홍보마케팅활동을 대대적으로 펼친 후 10배 넘는 가격에 경매에 넘기는 게 이들의 비즈니스모델이다.
중국의 기획사들은 한국인 작품은 구입하지 않는다. 한국의 미술시장이 협소한 만큼 투자가치나 향후 환금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아무리 창의적이고 세련된 작품이라도 화가의 국적이 한국인이라면 중국인들은 작품을 외면한다. 예술성이 다소 쳐지는 중국의 작품들이 고가에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는 현실과 대조적이다.
이는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서양의 수집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이나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미술시장은 상대적으로 침체돼 있지만 중국의 미술시장은 그야말로 활황세를 지속하고 있다. 세계의 화랑, 수집가들이 뛰어난 중국작품들을 선점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다닌다는 것. 실제 베이징의 화랑거리인 ‘798’은 파란 눈의 외국인 수집상들로 매일 북적인다.
중국에 비하면 한국의 미술계는 초라한 형편이라는 게 김화백의 토로다. 그는 “만약 예를 들어 삼성그룹이 우리나라의 한 작가를 키운다는 소문이 나면 그 작가의 작품가격은 천정부지로 뛸 것이고, 세계 미술계들의 주목을 받게 되지 않겠는가”라면서 “우리나라의 재벌이나 수집가들은 오로지 유명 서양작가들의 작품수집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어 “동양화는 한국, 중국, 일본 3국에 국한되는 만큼 중국이 혼자의 목소리로 세계에 어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때문에 중국의 예술계는 한국, 일본과 공동보조를 맞춰나가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화백은 “과거 200년간 서양이 주도해온 글로벌 미술시장에 중국이 최대의 큰 손으로 떠올랐고 세계의 수집가들이 아시아의 작품들을 주목하고 있는 만큼 이를 기회삼아 우리나라의 미술계를 발전시킬 방법들을 모색해야 한다”고 힘을 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