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정치권에 따르면 박 위원장은 ‘중간보스’를 두지 않는다. 캠프 좌장을 만들지 않는 대신 실무.측근.정책.지역 그룹 등으로 나눠 측근들을 고루 포진시킨다. 실무그룹에는 최경환 의원, 이혜훈 의원 등이 측근그룹에는 유정복, 이정현 의원, 이학재 비서실장 등이 있다. 또 정책그룹에는 이한구, 유승민 의원 등이 속한다.
이 때문에 독선적 국정운영이 가능한 인사가 박 위원장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올초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변경 과정은 박 위원장의 폐쇄적 리더십이 잘 들어나는 예다. 국민공모의 형식을 갖췄지만 제대로 비대위 등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았다. 이에 유승민 의원은 “의원총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
19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모 친박계 의원 측은 “4년전이나 지금이나 박 위원장은 공천을 챙겨주지 않았다. 아무런 ‘당근’도 없이 박근혜 교에 교인으로 우리를 보는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반면 박 위원장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복수의 ‘중간보스’를 육성하고 힘을 주면서 2인자간 충성경쟁을 불러일으켰다. 박정희 정권시절 최고의 통치기구인 중앙정보부장의 면면을 보면 박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파악해볼 수 있다. 김종필 1대 부장(육사8기)에게 힘이 쏠리자 박 전 대통령은 김재춘 3대부장을 중심으로 한 육사 5기를 통해 8기를 견제한다. 김형욱 4대 정보부장 시절에는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간 경쟁을 유도하며 3선 개헌에 성공했다. 유신말기엔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재규 8대 정보부장에게 권력을 분점시켰다. 결국 양자의 감정 대결이 10.26이라는 비극을 불러왔다.
유신정권 공작정치의 실체를 폭로한 ‘김형욱 회고록’의 저자 김경재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은 중간보스를 끊임없이 양산하는 용인술을 보였다”며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중간보스를 키우지 않았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