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세 할머니와 같이 만들었다는 설치작품앞에서 설명중인 문지하 작가./박현주기자 |
(아주경제 박현주기자) "걸어놓고 보니 한국적이더라고요."
26일 서울 삼청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만난 작가 문지하(39)는 민화같은 작품앞에서 "미국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 참 한국적"이라면서 작품에 대해 한참을 설명했다.
작품은 마치 성황당 분위기처럼 신산스럽다. 분홍 연두 파랑등 형광색이 어지럽게 혼합되어 있고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구분할수도 없이 자유자재로 흐르고 이어진다. 영문과 한자가 담겨 붙여진 종이는 마치 부적처럼 보인다. 동양과 서양 문화의교차,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등 서로 상충하는 요소들이 한곳에서 꼬물거린다.
ㅎㅎㅎㅎ,^^등 문자(메신저)로 사용하는 문자가 무늬처럼 들어있는가하면, 어떤 곳을 상징하는 '패치'도 눈치껏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 SNS 대표 트윗터의 '새' 마크도 화면에 둥지를 틀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1세기를 상징하는 (줄임)문자와 마크들이 마치 옛날 전통회화 문자도나 화조도처럼 딱 맞게 어울린다.
동양화를 전공하지도 않았다. 판넬이나 한지에 아크릴로 작업한 꼴라주 형식이다. 동양화다 서양화다 구분도 묘하다.
문지하 작가 /박현주기자 |
즉흥적으로 작업한다는 그의 작품은 '짬뽕의 미학'이다.
“사람들이 익숙하면서도 어딘지 낯선 이미지를 통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불편한’ 작업을 추구한다”는 그의 작품은 먼 곳에서 대충 봤을 때와 가까이 다가서서 들여다봤을 때의 느낌이 전혀 다르다.
화면 안에 정교한 이미지들과 특성만을 살린 만화적인 요소들, 동양의 문인화와 서양의 명절 카드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이미지들이 화려한 색감속에 뒤섞여 있다.
작가는 "빨강 파랑도 누구는 태극마크를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슈퍼맨을 생각한다"면서 "색이 주는 의미가 많아서 색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매일 미국의 다문화 사회에서 뒤섞여 살다 집으로 돌아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국인’이라고 자각하곤 했는데 그런 지점에서 이 작업이 시작됐다”
작가는 "짜장면도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 아닌가. 중국에는 없다. 그 나라의 고유성이 그곳을 떠나면 다른곳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갖는다"며 "미국에서 식탁보로 사용하는 페이즐리 무늬 천은 한국에서 보니깐 등산할때 얼굴을 가리는 손수건으로 사용하더라"고 말했다.
세계는 거대한 박물관이고 여행자는 컬렉터라고 했던가.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작가는 그곳에서 받아들인 새로운 문물과 변화를 수집했다.
하지만 워싱턴과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13년째 미국에 살고있지만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작품으로 나타났다.
그는 “미국에서는 ‘어디에서 왔나(Where are you from)’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내 작업의 주된 이야기, 본질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며 “내 작업에 한국에서 산 26년과 미국에서 산 13년 세월이 다 녹아있다”고 덧붙였다.
이번전시에는 각나라를 상징하는 이미지 천들을 이어붙인 설치작도 선보인다. 84세 할머니와 같이 만들었다는 작품들은 마치 성황당 깃발들이 펄럭이는 분위기다.
색을 칠하고, 붙이고, 유명작가의 모티브를 차용해 재가공해도 한국적인 것으로 조합되지만 작품은 하나의 상징이 다양하게 해석될수 있고, 해석자에 따라 달라지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작품은 UBS 컬렉션, 아시아 소사이어티 앤 미술관, 스미소니언 미술관등 미국의 주요 10여개의 미술관과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지난해 조안 미첼 파운데이션의 2011 올해의 회화와 조각가 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미국 지역의 400여명 큐레이터들의 추천을 받은 작가중에서 최종 25인이 선정되는 미술상이다. 전시는 3월11일까지. 02-723-6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