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무기계약직 급증, 비정상 계층 양산 우려

2012-01-1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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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이재호 김희준 기자) 금융권의 무기계약직 직원 수가 급증하면서 조직 내 불화는 물론 사회적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기계약직은 비정규직 직원의 고용 안정을 위해 도입한 제도이지만 근로조건이 정규직에 비해 열악한 데다 노조 가입에도 제한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제3의 계층’으로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은행 직원 중 무기계약직 25% 달해

금융권에서 무기계약직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은행이다. 전체 직원의 25% 가량이 무기계약직이다.

은행들이 무기계약직을 급격히 늘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9년부터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2009년 7월 1일 발효되면서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직원에 대한 고용 안정이 의무화된 것이다.

은행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2년 이상 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대신 무기계약직에 포함시켰다.

이후 근무 기간 2년이 넘은 비정규직 직원들이 순차적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면서 지난해 말에는 비정규직 직원의 3배에 달할 정도로 급증했다.

카드과 보험 등 다른 금융 권역은 무기계약직 제도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카드사들은 은행과 달리 대면 영업 채널이 많지 않아 비정규직을 많이 채용할 필요가 없다. 비정규직 비중이 낮다보니 무기계약직 전환 사례도 드문 것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비정규직 가운데 업무 성과가 우수한 직원 일부를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있지만 전체 직원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편”이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영업을 담당하는 보험설계사가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직원 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 비중이 낮은 편이다.

◆ 정규직 전환 소홀… 상대적 박탈감 심각

무기계약직 제도를 도입한 초기에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비정규직 직원들이 해고에 대한 불안감 없이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은행들이 계약 만기가 도래한 비정규직을 별다른 조건없이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그러나 무기계약직은 고용 안정만 보장받을 뿐 급여나 복리후생 수준은 비정규직에 가깝다.

또 노조 가입에도 제한을 받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의견을 표출할 창구가 막혀 있다.

특히 은행들이 무기계약직을 포함한 비정규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에 소극적이어서 조직 내 계층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다.

실제로 국민은행의 경우 전체 직원 2만1867명 중 무기계약직이 4882명에 달한다. 지난해에도 200명 가량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반면 정규직으로 전환된 인원은 150명에 불과하다. 국민은행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은행권 전체의 정규직 전환 비중은 매년 3~4% 수준에 불과하다. 하나은행은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제도 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은행들이 비용절감을 이유로 비정상적인 사회 계층을 양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업무를 익힐 기회를 얻지 못하고 사실상 비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도 심하다.

한 시중은행의 무기계약직 직원은 “고용 안정에 만족할 뿐 일에 대한 성취감이나 조직에 대한 충성도는 크게 낮은 편”이라며 “은행원이라는 자부심보다 비정규직의 또다른 이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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