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2002년 12월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경제자유구역법) 통해 영리병원 도입을 처음 거론했다.
침체된 내수시장을 활성화하고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외국인 투자가 필요한데, 이들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외국인 전용 병원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 부가가치 21조·고용효과 21만명
한국은행은 영리병원 도입에 따른 의료서비스산업의 부가가치는 21조원, 고용증대 효과는 21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총산출과 총고용이 0.3% 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에 영리병원 설립이 가능해지면 의료산업 인프라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의료서비스도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후 진료 대상이나 투자자 등 세부 내용이 조금씩 달라졌지만 영리병원 도입은 꾸준히 추진돼 왔다.
정부는 2004년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경제자유구역법)’을 개정해 영리병원에서 내국인도 치료할 수 있도록 했다.
2007년에는 영리병원 설립 주체를 ‘외국인’에서 ‘외국인 또는 외국인이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한 상법상의 법인’으로 확대했다.
내국인도 외국법인과 합작으로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을 설립, 영리병원이 들어설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모두 마련했다.
◆ 인천·제주 영리병원 유치 적극
국내 8개 경제자유구역 중 영리병원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은 인천과 제주다.
인천 송도에 있는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은 영리병원이 제일 먼저 들어설 지역으로 꼽힌다.
실제 여러 외국 투자기관이 송도 내 국제병원 건립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천경제청도 투자기관 지원에 적극적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 경우 2006년 관련 제도가 완비됐다. 제주는 영리병원 단독 유치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영리병원 유치는 세 차례나 무산됐다. 경자법에 외국병원 참여 여부, 외국인 의사 고용비율 등 실행 규정이 미비한 결과였다.
이를 보완하는 법안이 지난해 잇따라 나왔다. 지난해 한나라당 황우여·손숙미 의원은 영리병원 도입을 위한 세부 실행 규정을 담은 법안을 각각 제출했다.
황우여 의원은 “병원과 학교는 외국인 투자에 영향을 미친다”며 경제자유구역 내 활발한 외국인 투자를 위해서라도 영리병원 설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2개 법안은 국회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계류 중이다.
◆ 복지부, 투자 기업과 대화 개시
정부는 국회 의결이 필요없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영리병원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해 10월 영리병원 설립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담은 경자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영리병원 개설 허가 절차를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외국면허를 소지한 의사·치과의사를 복지부 장관이 정한 비율 이상 고용토록 했다.
복지부도 영리병원 도입을 앞당기기 위한 행보에 들어갔다.
임채민 복지부 장관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지경부에서 영리병원 대안을 이달 중에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이라고 전하고 “경제자유구역에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의료법인·기업과 대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영리병원 설립…끊이지 않는 논쟁
제주특별자치도에 의료특구와 영리병원 설립을 위한 법안심의가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진행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과 지방자치단체 간의 영리병원 찬반 논쟁이 여전하다.
송도국제도시 주민들은 외자 유치와 외국인 거주를 촉진하기 위해 국제병원 설립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송도국제병원 설립은 송도 국제도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국내 의료계 전반에 미칠 영향이 충분히 검토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들은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의료비 폭등, 의료 서비스 양극화 현상이 초래되며, 결국 건강보험제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여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하자 외국인의 영리병원 설립에 문호가 개방된 것으로 간주한 일부 시민단체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의료민영화저지 및 건강보험보장성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를 비롯한 영리병원 반대 시민단체들은 한·미 FTA가 발효되면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아 약값 상승·영리병원 허용·의료 민영화에 따른 의료비 상승 등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지난해 11월 범국본이 마련한 ‘의료민영화의 다른 이름, 한·미 FTA’ 긴급 토론회에서 “한·미 FTA로 제약업계도 정부가 추산하는 피해 예상액 10년간 1조원보다 훨씬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FTA 이행과는 “건강보험제도는 한·미 FTA 협정 상 적용이 배제되므로 건보제도에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시민과 지자체, 시민과 시민 간에 영리병원 설립을 놓고 의견 충돌을 빚고 있는 가운데, 한·미 FTA가 발효되면 외국 자본에 의한 영리병원 설립도 본격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4월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보낸 공식보고서에서 “한·미 FTA로 한국 내에 미국식 영리병원을 설립하는 걸림돌이 제거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한·미 FTA가 발효되면 우리나라에 미국식 영리병원 설립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