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한반도 상황의 불안정성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동북아 정세의 '뇌관'으로 떠오른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변 4강은 상황의 안정적 관리가 동북아 전체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컨센서스' 속에서 전략적 협력의 틀을 모색하고 북한을 상대로는 '관리적 개입'을 시도하려는 흐름이 읽힌다. 각국이 북한에 대해 '조의표시'를 이미 했거나 검토 중인 이면에는 이 같은 전략적 포석이 자리한다.
특히 '포스트 김정일' 체제가 어떤 식으로 가닥을 잡느냐는 각국의 외교적 이해와 전략설정과 직결된 이슈다. 협력의 흐름 속에서도 동북아 외교지형의 새판짜기를 둘러싼 물밑 외교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한반도 주변질서를 좌우하는 양대 축인 미ㆍ중이 어떤 방향설정을 하느냐가 정세의 풍향계다.
그동안 지역안보 패권을 둘러싸고 갈등구도를 형성해온 미ㆍ중이지만 김정일 사망 이후 '전략적 관리'에 초점을 두고 전략적 협력을 꾀하는 흐름이 읽힌다.
이는 미ㆍ중이 올 1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2005년 9.19 공동성명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서 강조됐던 것처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해야 하는 중요성에 의견을 같이 했다"고 합의한 기조의 연장선이다.
미국은 한반도 상황의 안정을 겨냥해 대북 대응기조를 '전략적 관여'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북한 리스크'를 최소화해야할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북한의 내부체제가 안정화되는게 전략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19일 미일 외교장관 회담 직후 "북한의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전환(transition)'을 원한다"며 "우리는 북한 주민들과 개선된 관계를 희망한다는 뜻을 거듭 밝힌다"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미국이 '조의표명'을 검토 중인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를 두고 김정은 후계체제를 지지하는 것으로 확대해석하기는 힘들지만 미국도 현 국면에서 김정은 체제로의 승계를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봐야한다는 분석이다.
북한의 최대 후견국인 중국은 새로운 '김정은 체제'를 지지하며 북한내부의 체제 안정을 유도하고 있다. 중국 당ㆍ정ㆍ군 지도부가 전날 조전을 보내며 김 부위원장의 영도 체제를 인정한 것도 이런 차원이다.
여기에는 한반도 상황 안정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넘어 북한에 대한 큰 틀의 중장기적 포석이 깔려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미ㆍ중의 전략적 협력 흐름은 새로운 권력 중심축으로 떠오른 김정은 체제에 우호적 대외환경을 조성하며 내부 정비에도 유리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같은 대외환경은 김정은 체제가 김정일 애도기간과 곧이을 '강성대국' 축하기간을 활용해 안정적으로 '유훈통치'를 펼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 내부의 체제정비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돌출변수가 생길 경우 미ㆍ중의 전략적 흐름이 깨지면서 북한 체제의 향방을 둘러싼 외교적 갈등과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
러시아와 일본도 미ㆍ중의 이 같은 전략적 협력흐름에 가세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 문제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시도해온 러시아는 19일 북한에 조전을 보내고 양국 우호관계를 재확인하고 나섰다. 일본도 19일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관방장관을 통해 서둘러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 같은 주변 4강의 움직임 속에서 동북아 안보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6자회담이 내년초 일정시점에서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 김정은 체제로서는 일단 내부 정비에 주력하면서도 대외적으로 '정당성'을 과시하기 위해 6자회담을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차분한 대응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김정일 사망 이후의 불안정한 정세를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외교의 이니셔티브를 쥐는 '기회의 창'으로 활용하기 위해 보다 유연하고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