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기관은 보일러 열효율 등급을 시험·검사하는 곳으로, 에너지관리공단은 이곳에서 나온 결과를 기초로 열효율 등급을 지정한다.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두 곳이 귀뚜라미보일러의 작은 '항변'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최근 기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저탕식' 방식을 사용하는 귀뚜라미보일러의 기술적인 문제점을 기사화한 바 있다. 저탕식은 순간식에 비해 연료 소모가 많은 단점을 갖고 있어 해외에서도 사양화하고 있는 추세다. 국내에서는 경동나비엔을 비롯해 린나이코리아, 대성쎌틱, 롯데기공, 대우가스보일러 등이 모두 '순간식' 방식을 쓴다. 그런데 관련 기사가 보도된 이후 항의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는 해당 업체인 귀뚜라미보일러에서 걸려온 게 아니었다.
저탕식과 순간식 방식에 대해 취재를 했던 한국가스안전공사와 한국에너지기기산업진흥회 쪽이었다. 양쪽 모두 귀뚜라미보일러로부터 왜 그런 멘트를 했느냐며, "책임지고 기사를 삭제하라는 내용의 압박을 받았다"고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법적 대응까지 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고 했다. 사기업이 공기관에 압력 아닌 압력을 가한 것이다.
지금까지 귀뚜라미보일러의 열효율 등급이 객관적이고 공정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생긴다.
귀뚜라미보일러의 '압력' 이후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취재원 색출에 나섰고, 결국 취재원을 찾았다. 이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또 한국에너지기기산업진흥회는 취재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문제를 해결하라고 종용했다. 이런 이유로 두 기관은 계속해서 기사 삭제 및 멘트 내용만이라도 삭제해달라고 기자와 신문사에 요청해왔다. 물론 한국에너지기기산업진흥회는 계속 귀뚜라미보일러로부터 시달리고 있다.
언제부터 관리·감독업무를 수행하는 공기업이 사기업의 눈치를 보고, 휘둘렸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규제권'을 손에 쥔 공기관이 사기업으로부터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귀뚜라미보일러가 그렇게 대단한 기업이었는지 새삼 놀랍다. 거꾸로 타는 보일러의 숨겨진 뜻이 따로 있나 싶다. '숨겨진 뜻'이 무엇인지 의혹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