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버핏세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버핏세가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유럽발 재정위기가 확산되면서 글로벌 재정건전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각국의 정치적 이해가 엇갈리면서 주목받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버핏세에서 힌트를 얻어 고소득층의 증세를 추진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도 부유층 대상으로 소득세율과 상속세율 인상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신용등급 강등 경고를 받은 프랑스는 부유세와 소득 물가연동제로 재정을 확충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스페인도 폐지했던 부유세를 최근 부활시켰다.
부자들의 세금을 더 거둬 재정을 튼실하게 한다는 버핏세의 취지는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리세스 오블리주(Richesse Oblige)’와 일맥상통한다.
리세스 오블리주는 많이 갖고 있는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개념이다. 유대교 지도자인 조너선 삭스가 저서 ‘차이의 존중’에서 부(富)의 도덕적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데서 유래됐다.
사회 지도층의 의무를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처럼 부(富)에도 사회적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는 뜻이다.
금융권의 탐욕을 비판하며 미국 전역은 물론이고 세계 175개국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났던 반 월가 시위도 리세스 오블리주를 요구하는 물결의 하나다.
최근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리세스 오블리주를 언급해 우리나라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월가로 대표되는 기득권층에 대한 반발에서 나타났듯 은행들이 적당히 돈을 내서 도와주는 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금융의 바람직한 역할 정립과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금융권이 리세스 오블리주를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맞는 말이다.
금융회사들은 그간 공적자금 등 국민의 고통 부담 덕분에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거쳐 이익창출 기반을 구축했다.
정부는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 168조6000억원을 투입해 금융회사들의 손실을 메워줬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는 6조원 가까운 공적자금이 금융권에 지원됐다.
공적자금을 받아 위기를 넘기고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사상최대 이익을 내고 있는 금융회사들은 이제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되돌아 봐야 한다.
최고경영자의 김장담그기 행사 참여나 이벤트성 사회적 약자 지원 프로그램은 이제 그만두고 진정으로 금융권이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선 수수료 수입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해 양질의 이익을 낼 수 있도록 수익구조를 바꿔야 한다. 어떤 위기가 와도 스스로 살아날 수 있도록 경쟁력을 갖추는 게 일차적 책임이다.
또 생색내기용에 그치는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보다 촘촘하게 꾸려 금융 본연의 역할인 자금중개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지금처럼 해 뜰 때 우산을 줬다가 정작 비 올 때는 우산을 뺏고, 심지어 우비까지도 벗겨가는 일탈된 금융 관행을 고치는 게 금융권의 리세스 오블리주다.
나아가 사회적 약자와 금융소외자들도 금융자본을 쓸 수 있도록 금융안전망을 갖추는 제도적 배려가 필요하다. 은행에서 대츨을 받지 못해 제2금융권을 찾게 되고, 급기야 대부업체 자금을 써야 하는 상황의 금융소외자가 더 이상 방치돼서는 안 될 것이다.
1%에 의한 부의 독식을 비판하며 '1대 99’라는 슬로건으로 무장한 반 월가 시위대는 결코 남의 나라만의 얘기가 아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나아가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와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도 더 이상 있어서는 곤란하다.
대기업들이 창업세대에서 2세대로, 이어 3세대로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거액의 상속ㆍ증여세를 피하는 편법·불법을 지속하면 반 월가 시위처럼 '반 재벌' 반발이 들불처럼 일어날 수도 있다.
국내 금융권이나 대기업, 그룹 총수들은 리세스 오블리주를 몸에 밴 습관처럼 실천할 때가 왔음을 깊이 새겨야 한다.
(아주경제 송계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