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비준> 한미 FTA 비준 4년반 '우여곡절'

2011-11-22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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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비준안이 협상 타결 4년4개월만에 가결됐다.

한미 FTA 비준안이 가결되기까지 한미 뿐 아니라 여야간의 밀고 당기기는 끊임 없었다.

한미 양국은 지난 2007년 4월2일 한미 FTA 협상을 타결지었다. 그러나 같은해 6월30일 공식 서면부터 양국 모두 극심한 찬반양론에 시달려 용도폐기 직전까지 몰렸고 최근 비준안처리 과정에서도 여야 간 극한의 대결로 국론이 분열되는 진통을 겪어야 했다.

지난 2003년 8월, 당시 정부는 ‘FTA추진 로드맵’을 작성, 미국 등 거대 경제권과의 FTA 추진 필요성을 명시했다.

협상은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시작됐다. 2006년 1월 18일 당시 노 대통령은 “개방과 경쟁을 통해 세계 일류로 가겠다”면서 FTA 협상 착수를 결정했다.

2주만에 열린 첫 공청회는 농민 등 협정 추진 반대세력의 시위로 파행을 겪었다. 이어 김현종 본부장과 로버트 포트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2월 3일 미 의회에서 협상 출범을 선언했다.

그러나 한미 양국 내에서 FTA 협상결과를 놓고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미국에서도 민주당 주요 인사들은 한미 FTA에 대해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를 이유로 의회 통과에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2008년 4월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쇠고기협상을 기해 한반도는 '촛불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결국, 부시 행정부의 한미 FTA 비준은 좌절됐다.

그러다 미국의 금융위기로 일자리 창출이 정책 우선순위로 부상하면서 오바마 행정부가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비준동의안을 의회에 제출하겠다는 구체적인 일정까지 밝혔다.

미국은 자동차 분야 등 자신들의 우려 사안에 대한 추가협상을 원했고 한국 정부도 태도를 바꿔 협상테이블에 앉았다.

그러나 재협상 결과에 대해 미국과 국내에서 반발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게다가 한국에서는 번역 오류 사태마저 불거져 정부 위상이 실추됐다.

올해 6월 비준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고 7월 7일 미 상하 양원이 이행법안 초안을 채택하면서 비준안 처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8월 미 의회의 이행법안 처리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재정 적자 감축 협상으로 의회절차는 뒤로 밀렸다. 국내에서는 민주당이 ‘10+2’ 재협상안을 요구해 정부·여당과 대립했다.

미국은 민주-공화 간 FTA 처리에 합의해 9월 TAA제도 연장안이 의회를 통과, 10월 3일 행정부가 이행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국빈 방미에 맞춰 12일 상하 양원은 한국에 앞서 FTA 이행법안을 처리했다.

우리 국회는 외통위가 9월 16일 비준안을 회의에 부친 뒤 농민 등에 대한 추가 지원과 통상절차법 제정에 합의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민주당이 우려하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의 개선을 위해 ‘정부간 협상 약속’을 내놓았지만, 진전이 없었다.

결국 22일 한나라당은 '국회의장 직권 상장'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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