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국제영화제 한국 유치 업무를 담당했던 공연기획사 대표가 영화제 유치를 위해 한국방문위원회 위원장인 신동빈 회장에게 수차례의 술 접대와 선물을 건넸지만, 술자리에서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기획사 대표는 이러한 '약속 이행'을 문제삼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까지 접수한 상태다.
여기까지 소식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 회장에 대해 '술만 접대받은 파렴치한'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이번 사건에서는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다. 바로 '관계'다. 신 회장과 공연기획사 대표 사이의 '중간 관계'가 생략된 것이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던 기자는 이들 사이에 '노경수'라는 인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노경수 교수는 현직 서울대 교수이자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장남으로 올해 초 영화배우 박현진씨의 술접대 파문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문제는 노 교수 역시 올 초에 같은 공연기획사 대표에게서 동일한 내용으로 고소를 당해,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노경수 교수 고소건이 무혐의로 판결나자, 아무런 상관도 없는 신 회장을 걸고넘어진 것"이라며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노경수 교수와 신 회장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노경수 교수의 부친, 노신영씨는 현재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다. 외무부 장관을 거쳐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다. 지난 1994년부터 지금까지 롯데장학재단을 맡고 있을 만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신임이 두텁다.
노 이사장의 큰며느리는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딸인 정숙영씨이고, 둘째며느리인 홍나영씨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처제다. 유진 풍산그룹 회장이 둘째사위이기도 하다.
이 같은 명문가의 장남이 바로 노경수 서울대 교수다. 화려한 가족관계로 인해 그는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다양한 '인간관계'의 핵심에 위치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과 공연기획사 대표의 관계에도 일정 부분 '역할'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재벌가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은 일반인에 비해 의도적인 외부 접근이 많다. 이들은 인맥에 치일 정도로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마구잡이식 인맥보다 '성실한 관계'가 중요한 이유다.
이번 신동빈 회장의 고소건을 교훈삼아, 자칭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다고 자부하는 재벌가 사람들은 '관계'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한 번 내려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자신들만의 이너서클을 만들어 '은둔'하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