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부자이야기] 중국 대표 영어학원 신둥팡교육그룹 창시자 ‘위민훙’

2011-11-1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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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홍우리 기자) 중국 시내를 돌아다니면 눈에 가장 많이 띄는 광고 중 하나가 영어학원 광고다. 그 중 영어 꽤나 한다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추천하는 곳은 신둥팡(新東方).

90년대 초 15명의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작은 교실은 2001년 교육 기업인 ‘신둥팡교육과기그룹’으로 성장했다. 신둥팡은 오늘 날 중국 최대의 사교육 그룹으로서 중국 전역에 외국어 학원 48개와 재수학원 3개, 유치원과 서점을 각각 2개, 47개을 운영하고 있다. 신둥팡 직원 수만 4000명, 이 곳을 거쳐간 학생수만 1200만명이 넘는다.

2006년에는 중국 교육 업체로는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고 언어 교육에서 직업교육 육아교육 유학 컨설팅, 심지어 문화까지 세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해마다 수만명의 학생들을 배출하면서 ‘교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위민훙. 그는 1962년 장쑤(江蘇)성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입 시험에서 두 번 낙방하는 고배를 마신 뒤 3수 끝에 중국 최고의 명문대인 베이징대학 영문과에 입학했지만 그의 캠퍼스 생활은 상상만큼 화려하지 못했다.

유일한 농촌 출신인 탓에 표준어를 구사할 줄 몰라 소통이 어려웠고 영문과 학생이 영어를 읽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노력을 했지만 '꼴등'을 면치 못했던 위민훙은 결국 우수반인 A반에서 '상대적 열등반'인 C반으로 자리를 옮겨야했다. 학업 스트레스가 심했기 때문일까, 3학년이 되던 해에는 폐결핵으로 1년간 휴학까지 해야했다.

"대학생활 5년 동안 여학생 누구에게도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지 못했어요"
잔디밭에서의 추억, 핑크빛 로맨스, 누구나 하나쯤 있어봤을 낭만적인 캠퍼스의 기억도 없다. 대신 외로웠던 시간은 그에게 인내와 강인한 정신력을 남겨주었다.

85년 막 대학을 졸업한뒤 모교에서 외국어 교사로 일했다. 이 기간 학교 밖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는데, 베이징대학에서는 이 일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행정적 처분까지 받게된 위민훙은 1991년 학교를 나와 본격적으로 사교육에 뛰어들었다. 그는 우선 베이징시 사립학교 교사로 취직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93년, 신둥방교육그룹의 전신인 신둥팡 영어학원을 세웠다. 날로 늘어나는 영어 수요에서 발전 가능성을 본 것이다. 90년대 중반, 중국과 해외 국가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출국의 문턱이 낮아졌고 유학생 수도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위민훙은 자신이 유학을 준비했던 경험을 살려 차별화된 유학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했다. 동시에 미국 대학 입학에 필수적인 GRE와 토플 전문학원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베이다(베이징대학을 이르는 말)에 대한 원망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고맙게 생각한다. 학교에 남아있었다면 지금쯤 부교수가 되었을 것. 불행인지 행운인지는 모르겠다"
위민훙이 모교에 느끼는 감정은 여느 베이다 졸업생과는 사뭇 다르다.

"사람은 나이가 들 수록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매력'을 중시해야 한다. 기백과 기개가 필요하다"
위민훙이 신둥팡을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영어가 아니라 올바른 인생관과 삶에 대한 진실한 태도,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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