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와 '꿈의 오케스트라'

2011-10-3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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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문화부장
(아주경제 박현주기자)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지난 25,26일 엘 시스테마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이 있었다.

'무상 급식'으로 촉발된 서울시장 선거와 달리 '무상 음악교육'으로 베네수엘라 '음악 기적'을 탄생시킨 엘 시스테마의 공연은 감동의 도가니였다.

빈민층의 청소년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일 것이라는 생각은 깨졌다. 무대전체를 가득 메운 150여명의 단원이 뿜어내는 하모니는 강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협연은 마치 떼를지어 리듬있게 이동하는 벌떼들과 철새들을 연상케했다. 음악에 문외한이더라도 느껴지는 역동적인 힘때문에 절로 박수를 보냈다. 

 공연이 깊어질수록 이들의 존재는 분명해졌다. 갑자기 불이 꺼지고 모든 단원들이 빨강, 노랑, 파랑의 베네수엘라 국기를 상징하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신나는 리듬의 남미 음악들이 춤을 추듯 쏟아졌고 단원들이 악기를 들고 객석으로 내려와 연주를 하고 춤을 추는 광경도 펼쳐졌다. 객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그야말로 콘서트 현장같은 생동감이 넘쳤다. 음악으로 하나된 이들의 밝고 자신있는 모습은 예술이 삶을 변화시킨 증표였다.

엘 시스테마. 국내에는 아직 생소하지만 이제 하나의 감탄사로 전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시스템'이라는 뜻의 엘 시스테마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으로, 세계적인 문화 복지의 선진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2008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가 됐다.

시작은 미미했다. 1975년 들리는 거라곤 총소리뿐이었던 어느 허름한 차고에 전과 5범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이들은 총 대신 악기를 손에 들고, 난생 처음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마약과 폭력의 위험에 노출돼 있던 아이들이 방황을 접고 삶의 목표도 생겼다. 청소년 마약과 범죄율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그들의 합주는 희망이자 공동체 의식을 가르치는 수업이 됐다.

엘시스테마에서 배출된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 ‘카라카스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전 세계 순회연주를 다닐 정도로 유명하다. 전 세계 25여개국에서 엘 시스테마를 본보기로 삼는다. 특히 클래식계의 젊은 거장을 꼽히는 LA 필하모닉 최연소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베를린 필하모닉 최연소 더블베이스 에딕슨 루이스등 엘시스테마 출신 젊은 음악가들이 세계 클래식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음악으로 기적을 이뤄낸 엘 시스테마가 탄생된 것은 혁신적인 생각을 가진 한사람 때문이었다. 정부관료로 경제학자이자 음악가(지휘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72)박사다. "음악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그의 믿음은 마치 한편의 동화와도 같은 실화를 만들어냈다.

11명에서 출발한 단원은 현재 30만여명이나 된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악기를 잡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2살짜리 어린 아이에게도 악기가 주어진다. 악기·악보는 물론 간식비, 교통비까지 지원한다. 엘시스테마가 뿌리를 내리기까지 그는 36년간 중단없는 음악교육을 위해 끊임없는 투쟁을 해왔다.
 
정부가 바뀔때마다 무상음악교육 지원을 위해 처음처럼 싸웠다. '연주하고 싸워라'가 모토일 정도다. 세계 각국 음악인, 민간 기업의 후원을 받아 날로 성장했다. 이제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회 개혁프로그램이 됐다.

엘 시스테마가 주목받는 것은 음악인재를 양성하는게 때문이 아니다. "음악을 배워 음악가로 성공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이런 제도가 인생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가치 있는 일이다"는 단원들의 말 처럼 음악은 아이들에게 품위 있는 사회적 위치로 인도해주고 있다. 

 엘 시스테마는 빈민층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즐거움을 배우고 행복을 찾기를 바란다. 악기를 가르치는게 아니라 협동과 이해를 배우는 작은 사회다. 엘 시스테마는 이들에게 걸맞는 꿈을 키워나갈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부터 ‘꿈의 오케스트라’사업이 9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마땅한 오케스트라 교습법이 없었다.

엘 시스테마는 지난 공연 당일 한국문화예술진흥원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꿈의 오케스트라'사업을 위해 36년간 노하우 교습법을 전수하기로 했다. 희망의 씨앗은 뿌려졌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엘 시스테마가 36년간 '연주하고 싸워왔듯', '꿈의 오케스트라'도 갈길이 멀다.

무상급식만으로도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는데, '무상 음악교육'은 언강생심일지 모른다. 하지만 혁신은 문화(예술)와 동거할때 창조된다. 우리나라에 아브레우 같은 리더가 나오기는 아직도 때가 이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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