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서울토박이들이 얼마나 되는줄 아나." "1.5%밖에 안돼."
영화 '통증'(감독 곽경택)은 도시빈민층, 아수라 용광로 같은 서울에서 소시민 투명인간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쇠파이프로 맞아도 끄떡없는 남순은 통증을 못느낀다. 덕분에 떼인돈 받아준다는 형과 함께 '차력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하루하루 의미없이 살아간다.
반면 시장통에서 장신구를 팔며 주사로 연명하는 동현은 스무살 넘어서도 살고 있는, 세상에서 7명밖에 없다는 혈우병에 걸렸다.
'받을돈과 뺏긴돈'을 빌미로 자주 마주치는 젊은 남녀는 서로의 아픔을 알아본다.
찜질방을 전전하며 서울하늘 아래에서 두발 뻗고 잠도 못잔다는 동현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온 남순.
무슨 사연이 있는걸까. 멈춘 뻐꾸기시계, 단란했던 '4인 가족'사진은 유리가 깨진채 벽에 걸려있다. 한때는 웃음소리를 담고 빛났던 가지런한 그릇들도 장식장에 잠겼다.
남순은 동현에게 이것만은 건들이지 말라며 박제된 표정을 보인다. 동현이 사용할 방문을 열어보니 오래된 사진처럼 누렇게 변한 방은 소녀의 원피스가 벽에 그대로 걸려있다. 방구석 모퉁이에 핀 곰팡이, 땅거미가 진 늦은 저녁처럼 어둑어둑하다.
남순이 그저 서식하는 장소로만 존재하던 '빈집' 같은 이 집이 동현의 손재주로 반짝인다.
곰팡이 핀 자리엔 알록달록 나무가 자라고, 창밖을 떠돌던 불안도 청춘남녀가 누워있는 빈집에서 잠시 숨을 죽인다.
감정이 섞이고 더 살고싶은 욕망을 새긴 따뜻했던 밤, 남순은 힘을 얻는다.
'떼인돈 받는 차력 퍼포먼스' 개인기를 영화 스터트맨으로 승화시키며 영화속 주인공 멘트를 '생활의 위트'로 구사할 능력도 생기고 얼굴엔 웃음꽃도 핀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동현이 쿨럭이며 쓰러진다.
병원에선 희귀병의 약값이 5000만원에서 1억까지 한다는 멘트를 남기고 돌아서고 남순은 어떻게든 돈을 구해보겠다고 다짐한다.
동현은 부담이다. 여유있고 건강한 남자를 만나겠다는 동현의 맘에도 없는 한마디에 속울음을 삼키고 돌아선 남순.
그녀가 우는 모습에 '피철갑'을 온몸에 둘러도 못느꼈던 통증을 가슴으로 느낀다.
빈집에 갇힌 그를 세상으로 나오게 한 그녀를 위해 남순은 자신을 기꺼이 내준다.
재개발현장 제물값으로 받은 2500만원을 검정비닐봉지에 담아 동현에게 남긴다. '결혼해도 한번만 만나달라'는 편지와 함께...
'살아남은자의 슬픔' , 삶은 고통이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외톨이로 살아온 남순(권상우)의 어눌한 표정과 툭툭한 말투가 감정선을 아리게 자극한다.
어둡고 축축한 현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화려한 조명에 빛나는 사람들을 좇는 세상속에 이 영화 거두절미하고 묻는다.
'울고 싶은일 생길때 대신 울어줄 사람'이 있는가.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그래도 사랑이 진리라는.., 아프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