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탈한 외모지만 대쪽같은 성품의 인권 변호사로 유명하며,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6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박 변호사는 이른바 '긴급조치 9호세대'로 1975년 서울대 법대 1학년 재학시절 유신체제에 항거해 할복한 고(故) 김상진 열사의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 제적된 뒤 단국대 사학과로 옮겼다.
80년 사시 22회에 합격, 대구지검 검사로 1년여 근무하다 옷을 벗고 인권변호사로 변신했다.
권인숙 성고문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말지(誌)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다.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상임집행위원장을 역임한 데 이어 2002년부터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를 맡아 활발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왔다.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던 안 원장이 `마음 속 응원자‘라며 애정을 나타냈고, 결국 후보직을 양보할 만큼 깊은 친분을 키운 것은 아름다운가게의 사회공헌 활동이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