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은 1937년 부산 영도에 조선중공업㈜이란 이름으로 설립, 한국 조선업의 시초가 됐다. 그 이듬해 국내 최초로 390t급 철강 화물선을 건조한 기록도 갖고 있다.
1945년 해방 이후 대한조선공사로 재출범, 1968년 민영화를 거쳐 1969년 국내 최초로 건조 선박을 해외에 수출했다. 당시 건조된 철강어선 20척은 대만에 수출됐다. 이후에도 1972년 국산 경비정 ‘학생호’ 건조, 1974년 당시로써는 대형 선박인 3만t급 6척을 미국 걸프사에 인도하는 등 ‘국내최초’란 수식어를 줄곧 달고 다녔다.
현재의 한진중공업이 된 것은 1990년, 한진그룹이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부터다. 그 이후도 아시아 최초로 ‘멤브레인’형 LNG선을 건조하고, 국내 최초로 해저 광케이블선을 건조하기도 했다. ‘멤브레인’이란 이중선체 화물창 내벽에 방열재를 설치, 경재성과 안전성을 높인 LNG선이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졌으나 그만큼 태생적 한계도 분명히 있다. 현대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 같은 후발업체 조선소 면적이 495만~660만㎡(150만~200만평)에 달하는 반면 영도 한진중공업의 규모는 10분의 1도 안 되는 26만4000㎡(8만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형 선박을 건조하기 어려울 뿐더러 수주를 하더라도 주문량을 소화하기에 부족한 실정이다.
조 회장은 “영도조선소는 선박 대형화 추세를 따라갈 수 없으므로 규모에 맞는 특수 선박 건조로 특성화 할 계획”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조립량도 연 14만~15만t이면 정상화 될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회사는 이를 보완키 위해 선체 중앙은 도크에서 조립하고, 도크로 삐져 나간 꼬리 부분 용접은 물속 인공 구조물에서 실시하는 댐 공법 같은 특허 신기술을 개발, 이 곳에 적용했다. 이를 통해 8000TEU급 중대형급 컨테이너선도 만들기도 했다.
특히 2007년12월에는 숙원이던 대규모 조선소를 필리크 수비크만 경제자유구역 내에 설립했다. 이 곳은 최신 첨단설비를 갖췄을 뿐 아니라 규모 면에서 영도 조선소의 9배, 세계 20위권에 든다.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2008년 8월 18만t급 벌크선 수주 이래 3년 동안 단 한 차례의 수주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더불어 국내 경쟁사가 LNG선ㆍ쇄빙선 등 고부가가치 선종과 고가 해양 플랜트 부문에 집중, 성과를 낸 반면 한진중공업은 이 같은 변화에 뒤쳐졌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 여파로 영도조선소는 2008년 12월 기준 148만CGT(표준화물선환산t수)에 달하던 수주 잔량이 올 6월 기준 12만CGT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수비크조선소 역시 건조 직후인 2008년 165만CGT와 엇비슷한 180만CGT에 그쳤다.
한진중공업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대비 14.6% 감소한 2조7758억원, 영업이익 역시 58.1% 감소한 1932억원으로 517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따라서 조남호 회장이 정상화에 전략을 다하겠다고 밝혔음에도 빠른 속도의 회복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외적으로는 미국의 더블딥 우려, 내적으로도 극한까지 치달은 노사관계 해소, 크레인 농성 해제, 청문회 참석 등 수많은 불안요소가 남아 있다.
조 회장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에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 회장은 지난 주말 귀국까지 50여 일의 출장 일정 동안 유럽 선주들을 만나 선박 수주를 추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이날 부산시청에서 호소문을 발표하고 대한상의 등을 찾아 협조를 구한 조 회장은 오는 17일로 예정된 국회 한진중공업 청문회에 참석한 후, 회사 정상화를 위해 본격적인 경영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선박 납기기간 등 영도조선소의 장점을 살려 부가가치가 높은 LNG선·컨테이너선 중심의 해외 수주 활동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지난 53일 동안의 해외출장 기간에도 일본·홍콩·독일·영국 등지를 돌며 10여곳의 선주사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