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과점문제는 기름값 논쟁이 발생할 때마다 어김없이 거론된다. 때문에 정부는 그간 공급자 간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시도해왔다. 상표표시제 폐지, 혼합판매, 자가폴 주유소 등이 그것. 하지만 모두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이 가운데 석유공사는 남아 있는 몇 안되는 대안들 중 가장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이는 카드였다. 그런데 이 카드가 '대안주유소' 때문에 옆길로 새버린 느낌이다.
석유공사가 공급사로 진입할 경우 기름을 팔 곳이 없다는 게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다. 정유사와 주유소 간 상표계약의 연결고리가 단단해, 석유공사의 기름을 구매하겠다고 나설 주유소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혼합판매가 실패한 이유와도 같다. 때문에 정부는 대안주유소를 새로 만들어 석유공사의 공급물량을 처리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안주유소는 실현가능성이 낮고 부작용이 심각해 업계서는 '전시행정'으로 비난받고 있다. 대안주유소는 노마진 영업으로 기름값을 낮추는 자선사업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자선사업을 하기에는 비싼 땅값과 운영비 등 감당해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 더욱이 자선사업이 오히려 주변 주유소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시장을 파괴할 수 있다면 석유공사의 시장 진입 명분도 훼손될 것이다.
정유사 등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정부의 발표 이전에 대안주유소를 전혀 몰랐다고 한다. 정부가 정책의 현실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업계와의 의견조율 과정을 생략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관계 부처 담당자가 내달 다른 부서로 이임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누군가 '백지상태'인 사람이 이 어려운 숙제를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기름값 문제를 다루는 행정의 전문성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