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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동해안 위치한 항구도시, 10년째 클린도시로도 꼽힌다. 구랑유 두 섬과 지우룽강 입구의 본토로 구성되어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가 허용되는 경제특구로 어업, 조선업, 식품가곡, 섬유, 제혁, 기계, 화학, 금융업이 발달하였다. |
고난의 역사, 아름다운 샤먼
샤먼(廈門·하문)은 영국의 아편전쟁에서부터 일본의 식민지 등을 겪은 아픈 역사를 간직 한 곳이다. 지리상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만과 전쟁도 치열했다. 샤먼은 세월이 흘러 중국의 4대 경제특구 탈바꿈했다. 열을 가해 두드릴수록 강해지는 무쇠처럼, 샤먼의 ‘빛나는 지금’은 과거의 역사에서 비롯됐다.
△집념 역사 집미학촌(集美雪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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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미학촌의 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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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가경 선생의 기념비, 등소평이 직접 기념문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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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미학촌의 학원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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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가경 선생의 일생을 돌로 조각해 전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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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가경 선생의 묘지는 거북이로 장식 되어 있다. 머리는 바다 속에 있어 죽어서도 중국의
미래를 지켜보겠다는 뜻이 있다. |
“불타는 마음으로 조국을 사랑하고, 소처럼 일하자”진가경 선생이 남긴 말이다.
집미학촌은 진가경 선생이 창시한 학자 구역이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고무나무 농원을 하며 실업가로 성공했다. 1913년 고향에 돌아온 그는 재산을 털어 초·중·고와 다양한 분야의 대학교까지 수십개의 학교를 지어 하나의 마을을 세웠다.
진가경 선생 기념탑은 높이는 28m인데 28년의 전쟁을 뜻한다. 기념탑으로 올라서는 33개 계단에는 의미가 있다. 처음 13개의 계단은 진미학촌 처음 지을 때 고생을 뜻하고, 그 다음 10개는 운영하면서 제일 힘든 세월, 8개 계단은 중국 8년 중·일전쟁을, 3개의 계단 내전을 뜻한다.
기념탑 아래에는 진가경 선생의 능묘가 있다. 거북이 모양의 능묘에는 머리가 없다. 거북이 머리는 바다를 향하고 있다. 이유는 중국의 미래를 지켜보는 진가경 선생의 애국심을 뜻한다. 조국을 위해 문맹을 깨우치려 했던 그의 애국심에 많은 이들이 이곳에 조의를 표하고 있다.
△샤먼의 자존심 호리산포대(虎里山炮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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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포대, 거대한 크기의 해안포대는 한번 발사하면 45분간 열을 식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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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산포대의 지휘부 회의 모습을 재현했다. 이 중 사람이 한명 있다. |
호리산포대는 청대(淸代, 1891) 외압에 항쟁했던 포대로 5년에 걸쳐 만들어 졌다. 당시 중국의 대포는 한 방향으로 밖에 쏘지 못했고, 이 약점을 파악한 영국은 침략에 성공했다.
이에, 중국은 독일에서 해안대포를 은 25만냥 주고 2문 들여왔다. 해안대포는 13m의 길이와 50톤의 무게, 360도 회전이 가능한 포대다. 해안대포의 사정거리는 16km다. 거대한 규모의 해안대포는 23명의 장정이 움직여야 하며, 한번 쏘고 나서 45분간 열을 식혀야 한다. 현재 2대중 1대는 녹여서 소실 됐고 1대만 남아 있다.
해안대포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어 일본 전함을 격함 시켰다. 전 세계에서 원래 위치에 가장 오래 남아있는 포대이자 가장 큰 규모의 포대로 남아 있다. 오후 4시에는 관광객을 위해 수문장 교대식이 있으며 대포도 1발 발사 한다고 한다.
호리산포대 앞 해변은 가족, 연인, 부부 다양한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으며, 해변가를 끼고 있는 산책로도 즐길 수 있다.
△소원을 말해봐 남보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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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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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못에는 불교 신자가 풀어준 많은 수의 잉어, 붕어, 자라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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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타사에서 소원을 비는 현지인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
남보타사(南普陀寺)는 중국 4대 절 중 하나로 뒤에 오노봉[五老峰]이 있다. 오노봉이란 다섯명의 노인이 앉아 있어 ‘오노봉(우라이펑)’이라 불리며 이 산은 ‘만석식물원’과 연결되어 있다. 샤먼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다. 2만여평이 되는 이곳에 250여명의 스님이 살고 있다. 6월 현재 4개의 건물 중 한곳은 공사 중이다.
남보타사에서 처음 발길이 닿는 곳은 ‘미륵불’이다. 관광객들은 이곳 향에 불을 피워 소원을 빈다. 현지인들 이야기론 소원을 잘 들어 준다고 하니, 속는 셈치고 소원을 빌어봐도 좋겠다. 중국은 한국과 달리 부적을 바로 태우는데, 건강, 재물, 인연 등 자신이 원하는 부적을 사 ‘금연정’에서 태우면 된다.
또 절에 들어서기 전 거대한 연못이 있는데 팔뚝보다 큰 잉어들이 팔딱팔딱 뛰어오른다. 이곳 ‘방생못’에서는 신자들이 잉어, 붕어, 자라 등을 놓아주며 불교의식을 치른다.
예전의 중국은 공산당 단일당으로 종교를 믿지 못했다. 그래서 불교신자들은 불상을 땅에 묻어 제를 지낼 때마다 꺼내곤 했다고 한다.
이곳 남보타사는 당나라 오대(五代) 시기에 창건되었다. 이후 전란을 거듭하며 소실과 재건이 거듭 돼, 중국의 아픈 불교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현재 중국은 불교, 기독교 등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
△ ‘금문도’에서는 대만이 한눈에
남보타사를 10분 거리에 해변풍경을 볼 수 있는 환도로가 있다. 마라톤 코스로도 유명한 이곳은 1949년 중국과 대만이 전투를 벌인 곳이다. 1958년까지 이어진 전투에서 47만의 포탄이 떨어졌을 정도라 하니 얼마나 치열했을지 짐작이 간다. 언론에서도 연평도 사건 때 안보 문제로 금문도를 언급한 바 있다.
대만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자 금문도를 요새화 하려고 했다. 집집마다 방공호 설치는 의무이며, 섬 전체에 민간 대피소가 10곳 지하갱도는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 길이를 합치면 10km나 된다.
금문도의 지하요새 작업은 1992년까지 30년간 이어졌으나, 이를 끝낸 것은 무력이 아니었다. 2000년대 초부터 중국대륙과 직항로가 열리고 2004년 중국인 관광이 시작되면서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지속적인 양안관계를 이해하고 교류한 결과였다.
금문도에 날씨가 좋으면 지금도 대만을 볼 수 있다. 수영 잘하는 사람은 건널 수 도 있는 가까운 거리다. 이곳에는 ‘일국양재통일중국’이라는 표지가 대만이 보란 듯이 세워져 있다. 중국인의 긍지과 자긍심이 보인다.
‘일국양제(一國兩制)’란 등소명이 처음 사용한 말이다. 하나의 국가 안에 다른 성격의 두 가지가 병존하는 상태를 말하며, ‘통일중국(統一中國)’ 중국으로 통일하자라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