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에 집착했던 정부의 '고환율 저금리' 정책이 수입 물가를 잡는 데 실패하면서 물가불안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거세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 실패의 책임을 기업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는 것. 이로 인해 실적 악화 및 주주가치 하락 등 기업 안팎의 경영 환경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현실 무시한 서민정책
포스코는 원료가격 급등에도 정부의 강력한 물가안정 정책에 따라 9개월 가량 가격인상을 늦춰 오다가 지난 4월 19일 가격을 올렸다. 이 기간 동안 영업이익률은 급속하게 악화됐다. 포스코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률은 7.1%에 불과했다. 올 1분기 영업이익률도 10% 수준에 머물렀다. 지난해 같은 기간 20% 수준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치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2분기 원료가격은 철광석이 전기대비 25% 증가한 t당 171달러, 원료탄은 코크스 주원료인 강점탄이 47% 상승한 330달러 수준”이라며 “포스코는 원료가격 인상분을 제때 제품가에 반영하지 못하면서 영업이익률이 크게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자동차·조선·가전 등 철강재 수요가 많은 기업들도 정책 결정에 혼선을 빚고 있다. 자동차 부품소재 업체 관계자는 “수입 등 소재가격은 오르고 있지만 포스코의 출고가격 발표가 늦어지면서 제품 가격 인상을 함께 늦추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대기업들의 상생경영 평가지수인 ‘동반성장지수’는 당대기업들의 자율적인 상생을 유도하기 위해 제시됐다. 하지만 제도 정비가 늦어지면서 원자재가격 상승과 환율변수, 단가인하 압박으로 인해 고사 위기에 있는 중소기업 상당수는 생존마저 걱정하고 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제시한 ‘초과이익공유제’ 역시 역설적이게도 중소기업들의 숨통을 조이게 됐다. 정부의 강권에 상생 움직임을 보이던 대기업들이 이익공유제에 반발을 시작한 것. 대기업의 한 고위 임원은 “참을만큼 참았지만 이제는 기업들도 정부의 정책에 끌려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압박 수위 점점 높아져
그럼에도 산업계 전반에 걸친 정부 압박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액화석유가스(LPG) 수입·판매사인 E1은 4월 30일 프로판 및 부탄가스의 5월 충전소 공급가격을 4월보다 ㎏당 69원 올리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E1의 발표는 5시간 만에 뒤집혔다. 업계에서는 E1이 국제 LPG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정부의 요청으로 동결한 것 아니냐고 관측했다.
특히 정부는 올해 들어 정유사와 통신사에 대대적인 압력을 행사하며 가격 인하를 유도했다. 결국 SK에너지 등 정유사들이 가격 인하에 ‘울며 겨자먹기’로 나섰다. 서울우유 역시 지난 2월 인상 계획을 발표한 지 반나절 만에 입장을 철회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자부품 중소기업의 고위 임원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정부 관계자와 대기업들의 동반성장 움직임에 대한 언론보도를 접하지만 정작 체감효과를 느끼기 어렵다”며 “정부가 여론을 의식한 생색내기 동반성장, 서민경제 활성화에 집착하지 말고 현실에 충실한 정책을 펼쳤으면 한다”고 전했다.
◆관치마저 부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의 ‘연기금 주주권 행사’ 발언이 더해지면서 기업들의 압박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곽 위원장이 직접 언급한 삼성전자·포스코·KT 등이 이미 글로벌 기업인만큼 정부의 직접 개입이 오히려 이들의 주주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국내 연기금의 지배구조는 사실상 정부의 입김 아래 놓여 있다”며 “비전문가들이 글로벌 기업의 경영권을 간섭하면 의사결정의 신속성이 훼손되는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 ‘백화점·대형마트 등의 판매수수료 공개’를 밝힌 김동수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대해서도 유통업계의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업에서 판매수수료가 영업비밀이라는 것은 기본 상식”이라며 “김 위원장이 영업 비밀에 대한 개념도 모른다고 꼬집었다.
즉 판매수수료는 백화점의 순매출에 해당하는데 ‘수수료’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백화점이 임대업자처럼 수수료만 챙기는 걸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