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에리언은 20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의 부채 문제의 해결을 미루는 것은 사태를 더 악화시켜 위기를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7개국) 전체로 전이시키는 꼴"이라며 "안 됐지만, 나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쁜 선택이란 그리스의 부담 일부를 투자자들이 떠 안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좀 더 나은 비용분담 방식으로, 그리스 사람들이 더 많은 부담을 나눠 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그리스를 시작으로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지로 확산된 재정위기는 국제통화기금(IMF)이 75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지원했는데도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사실상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황에 몰린 그리스를 추가 지원하는 과정에서 민간 투자자들의 참여(손실 감수)는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데 합의했지만, 이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엘 에리언은 그리스의 채무 조정 방식을 특정하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그리스 국채의 순자산 가치를 탕감하는 '헤어컷'과 채무 원금 삭감 등의 가능성을 견주고 있다.
엘 에리언은 그리스 채무조정 과정에 민간이 참여하는 데 대해 "지금까지는 여론이 그리스 사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면서도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이 그리스인들인 만큼, 이제는 그리스 의회나 EU, 유럽중앙은행(ECB)은 잊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독일과 프랑스 등 유로존 주요국들이 내심 그리스에 대한 추가 지원을 꺼리고 있는 데 대해서는 "사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부담을 EU 전체가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엘 에리언은 그리스가 맞은 위기를 2001년의 아르헨티나 디폴트 사태에 비유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디폴트에 빠졌지만,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투자자들이 아르헨티나의 디폴트를 펀더멘털상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적인 문제로 인식해 투자 기회를 엿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엘 에리언은 유로존이 1년 넘게 그리스 사태를 다루고 있지만,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하나는 과도한 부채, 나머지는 성장 불능 문제다. 그는 "이 두 가지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신문 머릿기사를 장식하며 시장에 부담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