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반 총장은 올해 1월, 늦어도 3월에는 연임 도전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힐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코트디부아르의 대선 불복 사태를 시작으로 올해 초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바람,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 여파로 인해 반 총장의 계획은 차질이 빚어졌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반 총장에게는 기회로 작용했다. 그가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중동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연일 기자회견과 성명, 주요 지도자들과의 만남 등을 통해 "이 지역 지도자들은 국민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평화적 시위대에 대한 무력 진압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며 국제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기 때문이다.
그에게 비판적이었던 휴먼라이츠와 같은 인권 그룹도 "반 총장이 대담하게 행동하고 있다"며 찬사를 보낼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유엔에 가장 많은 분담금을 내고 있고 사무총장 선출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국내 여론도 크게 호전됐다.
과거 유엔이 세계 평화와 발전에 긍정적 역할을 하느냐는 질문에 30% 가량이 그렇다고 답했던 데 비해 최근 유엔 파운데이션 조사에서는 60%가 긍정적인 평가를 했고, 미국이 유엔에 분담금을 내야 한다는 의견도 85%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정세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분주하게 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반 총장은 세계 각국 지도자들과 의견교환을 하는 일이 많아졌고, 이는 연임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의 자연스런 기회로 연결되기도 했다.
반 총장이 미·영·불·중·러 등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 정상의 지지를 확실히 얻게 된 것도 리비아 등 중동 사태와 관련한 각종 국제 회의 및 개별 정상 면담 과정에서였다.
호전된 국제 여론과 사전 정지(整地)작업으로 인해 연임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것이다.
연임 절차를 속전속결로 진행하라는 것은 안보리와 유엔 회원국들의 요구이기도 하다.
반 총장의 한 측근은 "상당수 회원국들이 상반기중에 재임을 확정짓고 향후 5년의 비전과 청사진을 오는 9월 총회에서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략적으로도 연임 결정 과정은 짧을수록 유리하다. 혹시 있을지 모를 일부 서방 언론이나 유엔내 반 총장 반대세력에 의한 부정적 여론 확산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효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