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사 대표 김모씨(43세)는 30대에 회사를 차려 지역의 젊은 경제인으로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끝까지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한 채 회사를 접어야 했던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자신도 현재 실업자인 김씨는 “중견·대형건설사들이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소규모 공공공사 입찰에 뛰어들면서 영세 건설사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며 현재 건설시장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구조에서 소형사들이 살아남기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장이 자꾸 작아지고 일자리가 계속 줄어드는 것은 정부의 정책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처럼 건설경기 회복속도가 늦어지면서 건설 시장을 떠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신규로 등록된 업체수가 대폭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A사처럼 자발적으로 폐업신고를 하는 경우도 많다. 영세한 업체뿐 아니라 시공능력평가순위 100위권에 드는 건설사까지 부도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실제로 건설업체수는 갈수록 줄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각 협회 자료를 집계한 결과를 보면 건설업체수는 2005년부터 매년 감소해 당시 1만3202개에 이르던 종합건설사가 지난해 말 기준 1만1956개로 1246개 줄었다. 특히 주택업체는 현 정부 들어 크게 감소했다. 부동산 호황기던 2006~2007년 7000개가 넘던 주택업체가 2008년에는 6092개, 2009년 5281개, 지난해 4906개로 급감했다.
100위 건설사 가운데서도 31개 업체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 가운데 경영정상화 된 곳은 경남기업과 신일건업 둘 뿐이다.
공사물량도 크게 줄면서 공사수주액도 줄어들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통계를 보면 이명박 정부 취임초인 2008년 공사 수주액(민간 포함)은 120조여원으로 전년 대비 6.1% 감소했다. 2009년에는 건설경기 부양을 위한 사회간접자본(SOC)예산 대폭 확대에도 수주액은 118조여원으로 1.1% 감소했고, 지난해는 103조여원으로 13% 줄었다. 2007년 증감률 19.2%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반면 금융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금융권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규모는 66조5400억원으로 전년도 82억4300억원에 비해 크게 줄었지만, 연체율은 12.86%로 전년도 6.4%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일자리가 줄어들자 건설업체 취업자 수도 매년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건설업 취업자수는 2007년 184만9000여명에서 2008년에는 181만2000여명으로 줄었고, 2009년에는 172만여명으로 감소했다. 지난해는 175만3000여명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4%로 여전히 많이 감소한 상태다.
시장침체로 고통 받기는 부동산 업계도 마찬가지다. 2000년 중반 부동산 활황기를 맞으며 우후죽순 늘어났던 부동산중개업소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 계속되는 거래부진에 울상이다.
회사를 퇴직하고 나온 베이비붐세대가 늘면서 중개업자수는 계속 늘고 있지만 거래가 안 돼 실제 거래실적은 거의 올리지 못하고 있다.
1650만㎡에 이르는 파주신도시 개발계획으로 중개업소들이 한꺼번에 몰렸던 파주 교하읍 일대. 이 곳에서 중개업소를 운영 중인 B사장은 “파주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되던 해인 2003년에는 신도시 개발예정지 주변에 늘어선 부동산중개업소가 80여개에 달할 만큼 성황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는 절반이 넘게 떠나고, 딱히 할일이 없어 남아 있는 업소들도 거래가 안 돼 임대료를 내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국의 부동산 개발계획에 관심을 갖고 몰려왔던 외국 투자회사들도 속속 떠나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부동산 투자 및 관리부문인 모건스탠리 캐피털은 지난해 국내 사무소를 철수했다. 국내 오피스 시장에 관심을 갖고 들어왔던 이 회사는 서울스퀘어 투자에서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부동산 투자회사 와코비아를 인수한 웰스파고도 지난해 7월 한국을 떠났다. 경기도 고양시 한류월드의 테마파크 조성사업에 30% 지분 참여를 했지만 원금 120억원을 포함한 177억7000만원을 회수한 뒤 한국시장에서 철수했다.
또 미국의 투자회사 메릴린치는 여의도 파크원 지분을 미래에셋자산운용에 팔았고, 서린동 SK그룹 본사건물도 지난 3월말 SK그룹에 되팔았다. 호주 맥쿼리도 국민연금에 충무로 극동빌딩과 중구 쌍림동 스마트렉스 빌딩을 매각하고 한국시장 떠날 날을 저울질하고 있다.
이들이 주로 투자해온 오피스시장은 공급률에 비해 수요가 줄면서 공실률이 늘어 투자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래에셋부동산연구소 조사를 보면 올 1분기 서울 오피스 소득수익률은 6.27%로 전 분기 대비 0.15% 떨어졌다. 오피스 수익률은 2008년 금융위기 때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계속 하향세를 띠고 있다.
이건수 미래에셋부동산연구소 연구원은 “오피스에 대한 초기 투자비용은 증가하는 반면 임대료 수익이 감소하면서 투자수익도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이 같은 현상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원은 “향후 5년간 서울지역 오피스 규모는 지난 10년 연평균 공급량보다 1.4배 증가하는 반면 공기업 지방이전, 사무직 종사자 증가율 둔화 등으로 소득수익률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