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차의 탈일본 현상은 이미 예고된 일이다. 비단 ‘엔고’나 올 3월 지진에 앞서서도 일본차는 해외 시장, 특히 중국 등 신흥시장의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도요타의 경우 2015년까지 중국 생산대수를 19만대 늘린 108만대로, 인도 생산대수를 6만대 늘린 16만대로 확대키로 했다. 혼다도 중국에서 2013년까지 24만대 늘어난 89만대, 장기적으로는 100만대 생산 체제를 수립키로 했으며, 연내 아르헨티나에 연산 3만대 공장도 신설한다.
반면 일본 생산은 줄이기로 했다. 도요타의 경우 궁극적으로는 현 390만대 생산에서 30% 줄어든 300만대까지 생산축소 방침을 정했다.
이는 곧 신흥시장을 무대로 한 한-일 양국 자동차 업체들의 본격 경쟁이 더 빨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일본차의 추락’과 ‘한국차의 폭발적 성장’의 이유로 한-일 양국 업체들의 신흥시장 대응 속도를 꼽아 왔다. 일본 업체가 ‘품질’에만 치중한 나머지 ‘적당히 빨리’ 만들어야 하는 신흥시장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 현대·기아차의 경우 중국 진출 11년 만인 2012년에 무려 141만대 생산체제를 갖춘 것은 물론, 비슷한 시기에 인도, 터키, 체코,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국에서의 생산을 빠른 속도로 늘리며 최근 수년 만에 이른바 ‘가장 주목할 만한 브랜드’로 꼽히게 됐다.
세계 각지에서 도요타, 혼다를 제치고 어느덧 연간 650만대를 판매하는 글로벌 ‘톱3’ 문턱까지 다가섰다. 10년 전만 해도 현대.기아차는 세계 10위권 밖 브랜드였다.
이를 인식한 일본 역시 2000년대 중반 들어 중국에 기술연구개발센터를 잇달아 세우고, 올들어 현지 전략 모델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올 연말 중국, 인도, 브라질 등지에 출시 예정인 도요타 ‘에티오스’가 대표적이다. 혼다 ‘에버루스’, ‘브리오’, 닛산 ‘마이크라’ 역시 비슷하다.
혼다의 경우 저가 브랜드인 ‘리니엔’을 내놨고, 도요타나 닛산 역시 이를 추진중이다.
지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를 겪은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지난해 적자를 벗어나며 올해부터는 신흥시장에서 현대·기아차와 본격 승부를 벌인다는 계획이었으나, 지진 여파로 인해 다시 연기될 위기에 놓여 있다. 도요타의 이 같은 ‘탈(脫)일본 선언’이 향후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